나는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야 했다.

내 두 발은 이 세상에 결코 닿지 않았다.

by 자유와 예술
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여행이 그저 여행에 불과해서 잊어버릴 수 있다고, 혹은 상자 속에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고 편리한 착각이다.
나는 카미노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정말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해 줄 수 없다.
하지만 그건 생생하게 살아 있고, 지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여행 전체를 들려주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핵심은 빠져 있다. 나도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머지않아 다시 그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아마 당신도 그렇지 않을까."
『불멸의 산책 Immortelle randnnee 』


삶은 여행의 연속이다.

여행은 멈춤이 아니라 흐름이다. 편안한 여기를 떠나 불편한 저기로 가는 두려움이다. 익숙한 이곳의 권태에서 벗어나 낯선 저곳에서 느끼는 설렘이다.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한 지금을 잊고 행복과 기쁨으로 충만한 내일을 그려보는 희망이다.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서 말한 것처럼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항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이다.


어느덧 모든 잎이 꽃으로 물드는 가을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가을이었다. 2021년 가을 끝자락에서 맞이한 해임 처분, 2022년 가을 문턱에서 당한 세 달 직무정지 처분. 어느덧 3년과 4년이 지났다. 햇수로 따져 보면 그리 옛일도 아닌데도 내겐 마치 수십 년 전에 일어난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내 어깨에 짊어진 고통이 너무 가혹해 그때의 기억이 뇌리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느닷없이 닥친 그때의 불행과 좌절은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 주었다.

충격이 지나치면 말 그대로 망연자실(茫然自失) 한다. 나는 그저 정신을 잃은 채 넋이 나간 상태로 마냥 허우적댔다. 내 두 발은 이 세상에 결코 닿지 않았다. 나는 중심을 잡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버둥거렸다. 심하고 거칠게 발버둥 칠수록 내 몸은 세상과 더욱 동떨어졌다. 나는 내동댕이쳐진 낙엽 마냥 이리저리 뒹굴고 다녔다.


나는 처절하고 집요한 생존 본능을 발휘해야 했다.

어떡하든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야 했다. 절대로 일상을 무너뜨리지 않고 마냥 버텨야 했다. 나 자신을 모질게 다그치고 채찍질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견뎌야 했다. 꼬박 이백여든 하루를 버텨 마침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끝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큰 고비를 넘자마자 또 다른 언덕이 턱 하니 버티고 있었다. 큰 파도를 넘자마자 곧바로 작은 파도들이 숨 쉴 틈도 없이 마구 들이닥쳤다. 잠시의 여유도 내겐 한없는 사치였다. 이미 크나큰 시련을 감당해 봤으니 그보다 작은 상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건 지나친 오만이고 편리한 착각. 해고라는 아픔이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았는데 다시 세 달 직무정지라는 소금을 덧뿌렸다. 나는 쓰디쓴 고통에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치욕과 분노를 느끼며 깊이 절망했다.


나는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쓰나미처럼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미안했다. 더 나은 내일을 소망하는 허울 좋은 명분에 갇혀 조금의 여유도 없이 마음을 다그치고 몸을 혹사한 내게 한없는 미안함을 느꼈다. 뜨거운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진정 무엇인가?' 머릿속엔 숱한 물음이 떠올랐지만, 나는 그 어떠한 것에도 답을 제시할 수 없었다.


나는 해 질 녘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곤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온갖 허무맹랑한 생각들, 파노라마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나쁜 감정들에 압도당한 채 멍하니. 하루하루의 일상은 허무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나를 한껏 옭아 맨 생각과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채 지칠 대로 지쳤다. 거칠게 할퀴어진 마음은 결국 짓물러 피고름이 흘렀다.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좌절감에 빠진 채 이 세상에 존재할 명분조차 심각하게 위협받았다.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지 않으면 숨조차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때 어렴풋하게 느꼈다. 지금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게 과연 무엇인지.

그건 동정 아닌 자기 연민(sympsthy), 아픔에 대한 깊은 공감(empathy), 살뜰한 보살핌, 진심 어린 위로, 따스한 격려. 그것도 타인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건네는 진정 어린 사랑이다. 나는 나 자신을 아낌없이 사랑해야 했다. 내가 나 자신을 삶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면서 제대로 사랑해야 했다.


나는 그 변화의 모멘텀을 여행에서 찾았다.

낯선 곳에서 맞닥뜨릴 생소한 풍경과 생면부지의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내 영혼을 칭칭 감아맨 생각의 족쇄와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멀고 먼 곳,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은 곳, 그런 곳이면 어디라도 좋았다.


어쩌다 마주한 우연이 삶의 방향을 바꾸듯 여행지 선정도 완전한 우연이다.

나는 그때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순례자』와 『연금술사〉를 연달아 읽고 있었다. 게다가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언젠가 꼭 해야만 하는 사명으로 느꼈다. 또한 프랑스 의사이자 외교관 장 크리스토프 뤼팽이 쓴 『불멸의 산책』에서, 아울러 대학교수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스스로 콘텐츠 크리에이터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느 논설위원이 쓴 칼럼(『도전은 산소다』 )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을 받은 터였다.


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 900여㎞를 걸은 건 다름 아닌 마음 검진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발로만 걸은 게 아니다. 물론 발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며 디디기조차 힘들 정도로 혹사시키며 걸었지만, 정작 또 힘들여 걸은 것은 내 마음이었다. 발이 걸으니 땀이 나고 물집이 잡힌다지만, 마음이 걸으니 그것은 내 속에 쌓였던 ‘숙변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정말 많이 울었다. 평생 울 것을 다 울었는지도 모를 만큼! 그 덕분에 나는 마음의 시력을 되찾았다. 내 속에서 뿜어 나온 눈물이 희뿌연 내 마음의 렌즈를 닦아준 덕분이었다. 마음의 시력을 되찾자 나는 자신을 더욱 분명하게 직시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선택한 곳은 스페인(spain).

유럽의 남서쪽 끝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에스타도 에스파뇰 (Estado Espanol). 서쪽은 포르투갈, 북쪽은 프랑스, 남쪽은 지브롤터 해협을 두고 모로코와 마주한 곳이다. 지중해, 비스케이만(灣), 대서양이 곁에 있다.

스페인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직항이 아닌 환승을 선택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Abu Dhabi)를 경유하는. 해 질 녘 출발해 깊은 밤에도 쉬지 않고 서쪽 하늘을 향해 계속 날았다. 꼬박 열일곱 시간을 비행해 8,502마일을 이동했다. 환승하는 다섯 시간을 빼고. 에티하드 항공의 식사는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아 편안했다. 파스타와 와인, 닭갈비와 맥주, 오믈렛과 주스, 치즈 샌드위치와 와인, 네 번 먹은 식사는 한결같이 정갈했다. 이것저것 살뜰하게 챙겨주는 작은 보살핌에 내 얼굴엔 기분 좋은 미소가 살포시 번졌다.


각양각색의 언어와 전혀 다른 얼굴이 한데 어울려 어디를 함께 가는 그 동질감이 마냥 신기했다.

외롭게 홀로 내동댕이쳐진 외톨이가 아니라 내 곁에 누군가 있다는 그 사실에 마음이 든든했다. 설령 한 번도 본 적 없고, 그 흔한 눈인사조차 없는 낯선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나는 실패한 겁쟁이였다.

나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훌쩍 떠났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닐 것이다. 결코 종점은 없다. 내 앞에는 새로운 시작점만 있을 뿐이다. 세상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다. 내게는 뭔가를 다시 시작할 자유가 있다. 속이 죄다 까맣게 타버렸지만, 내가 진정 바라는 그 뭔가를 할 자유, 절망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나아갈 용기, 이것만 있으면 내 삶은 무너지더라도 결코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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