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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by 호야아빠

이사 온 동네 주변에

가서 먹으면 짜장면이 3천원인 가게가 있어

아버지에게 같이 가서 먹자고 말씀을 드렸다.


'나가서 먹으면 비싸서'

외식을 '싫어하는' 아버지에게

그 제안은 당연히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고


아버지 역시

그렇게 싼 가게가 있냐며,

그런데 배달은 안되냐고 물으셔서


배달은 원래 가격 그대로 비싸게 먹고,

가서 먹어야 3천원에

싸게 먹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면 아버지와의

'외식' 혹은 외출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돌아온 아버지의 대답은


"가서 먹으면 좋긴 한데,

가게를 비워두고 갈 수도 없고,

손님이 언제 올지도 몰라서

가서 먹는 건 안될 것 같아."


날씨가 나름 화창한

일요일 정오 무렵,


다소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소파에 앉아

전국노래자랑 프로를 보는 와중에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서'

갈 수 없다며,

다음에 가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마치 영화 속 슬로모션 장면처럼

너무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수십 가지의 생각과 감정들이 일어났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지,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아버지가 농담을 하시는 건 아닌지,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 상황인 건지,

잠깐 착각을 하신 건 아닌지,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건지..


교통사고를 당한 것처럼 몰아치는

당혹스러운 감정과 달리,


슬로모션처럼

선명하게 보이는 말 한마디 한 마디와 달리,


주저주저하며 상황 판단을 거부하는

흐릿한 현실 감각은

순식간에 나를

현실 공간에서 꿈의 공간으로

끌고 들어갔다.


갑자기 영화 속으로,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는 작년 10월 말에

평생을 해왔던 가게를 폐업하셨기 때문이다.


이사 온 지 얼마 안돼

집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도,


이미 지난해 말부터

동네에서 길을 잃고 헤맨 일이

3~4차례 있었다고 해도,


계절이 어떻게 되고,

오늘이 몇 월 며칠이며,

지금이 몇 시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게 된 게

이미 여러 해가 되었다고 해도


이미 가게를 폐업한 지

1년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그것도 집 안에서...

아버지 치매가

이 정도 상황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치매가 갑자기 심해진 김혜자가

자기 '아들'을 몰라보고

'동네 아저씨'에게 아들에 관한 얘기를

주섬주섬 건네는 장면에서

펑펑 오열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황한 마음을 꾹꾹 진정시키며

차분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아빠.. 여기가 어디예요?"

"가게지~"


"우리 지금 가게 해요?"

"하지~?"


드라마 속 아들처럼 나도

아버지의 과거 기억 속

그 시간 그 장소로 들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덤덤히 대답을 이어가려 했으나


조금만 방심하면 터져버릴 것 같은

눈물을 꼭꼭 눌러 담으며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나도, 아버지도 무너지게 될까 봐.


나마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모든 게 망가지게 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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