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날, 위로의 한 잔

보석함 속에서 꺼낸 카페, 다크에디션

by 이설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다

골목 입구에서 발이 멈췄다.

같은 동네에서

몇 년을 미뤄둔 곳 앞에서였다.


같은 동네에 있지만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이 있다.


길은 알고 있고

이름도 익숙해서

이상하게 기억만 오래 남아 있는 장소.

힐끗 보고 지나가며

언젠가 와봐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곳.

나에게는 그런 곳이 몇 군데 있다.




연트럴파크를 지나

홍대에서 합정까지도 걷는 내가,

같은 동네의 어느 블록 아래로는

마음이 유난히 인색해진다.

이상하리만치

발길이 닿지 않았다.


이유를 붙이자면 붙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그냥

미뤄두기에 편한 거리였을 것이다.


커피 맛집이라는 소문도

아주 오래전부터 들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 저기가 거기구나 하며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뿐

가봐야지 하는 마음만

시간처럼 쌓여 있었다.


예전에는 라우터 커피였고

지금은 다크에디션커피라는 이름을 쓰는 곳.

바로 그곳이

그렇게 알고만 있던 카페였다.


그날은

거의 동네를 탐방하듯

걷고 또 걷던 날이었다.

오랜만의 아르바이트에

괜히 힘이 들어가 있었고

하루가 끝날 즈음엔

다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그만 좀 쉬자.


골목 입구에서

잠깐 멈춰 섰다.

더는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았다.

마침 그 골목을 지나고 있었고

그날은 지나칠 수 없었다.


카페는 크지 않았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습이

이곳이 처음인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말소리가 낮아지는 공간이었다.

혼자 앉아 있어도

괜히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다크에디션은

그런 공간이었다.


로스팅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었고

커피를 애정한다는 느낌이

확 들어왔다.


쌓여 있는 원두를 보며

괜히 이 집 커피는

어떤 맛일까 생각하게 됐다.


혼자만의 작은 살렘.


원두의 종류는 많았지만

그날은 고민을 더 얹고 싶지 않았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고

산미 있는 원두를 골랐다.


커피를 건네며

짧은 설명을 해주셨다.

길지 않은 말이었지만

그래서

오히려 귀에 남았다.


에티오피아 한 잔.

첫 모금을 넘기자

입안에서

상큼함이 먼저 왔다가

뒤늦게 달콤함이 따라왔다.


그날의 피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면 거짓말이지만,

적어도 조금은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커피가 기억에 남았다.


며칠 뒤

비슷한 무게의 하루를 보내고

다시 들렀다.

이번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였다.


두 번째는

확인에 가까웠다.

여전히 같은 맛일까?




이제 커피가 필요할 때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또 하나가 생겼다.


동네에 이런 곳이 있었다는 걸

알고만 있었던 시간이

조금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도

가봤다는 사실.

그걸로 충분했다.


가끔은, 이렇게 뒤늦게

발견한 것들이

오히려 강렬하게 남는다.

그날의 커피처럼.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