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에 머문 하루

쑥 슈페너를 찾아서, 상두그레이

by 이설



흐린 날이었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회색 하늘을 한 날,

김포의 한 카페를 찾았다.

그동안 계속 마음에 두고만 있던 곳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쑥 슈페너.

어쩐지 이런 라테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입맛을

나는 가지고 있다.

할매 입맛이랄까?


이미 몇 번 와본 사람들이라

다른 곳을 갈까 하는 말도 나왔지만,

한 번도 와보지 못한 나를 위해

결국 이곳을 향했다.

그 사실이 괜히 고마웠다.




상두그레이는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물 위에는 낚싯대가 늘어서 있고,

비가 내려도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보였다.

카페 창밖으로 보기엔

조금은 낯선 풍경이었다.



이름도 그렇다.

사람 이름을 상호로 쓴 건가 싶었는데,

상두는 이곳 산의 옛 이름이고

코끼리의 머리를 뜻하기도 한다고.

그래서 그레이.

코끼리를 떠올려도,

이날의 하늘을 떠올려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로스팅한 원두들과

베이커리 카페답게

진열장 가득한 빵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를 것은 많았지만

그날의 목적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다른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주문을 마치고

잠시 내부를 둘러봤다.

원목과 식물,

과하지 않게 정돈된 분위기.

주말이라 사람들이 많았지만

시끄럽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잠시 후,

기다리던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라테 위에 두툼하게 올라간 쑥 크림.

짙은 녹색.

장식처럼 얹힌 잎 하나.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조용히 한 입.

쑥의 담백한 단맛 아래로

커피의 존재감이

뒤따라온다.


달지 않고 질감 좋은 크림이

커피와 섞이면서

쑥 향이 더 또렷해진다.

쌉쌀함과 고소함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분 좋은 균형을 이룬다.


곁들인 빵도 몇 가지 있었지만

이날의 중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쑥 슈페너였다.


이 한 잔을 위한 날이었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말이라면 더더욱.

사람 많은 곳은

가능하면 피하는 편이다.


문턱을 넘는 게 힘들어질 때

나는

집 밖으로 나갈 이유를

커피에서 찾곤 한다.

맛있는 커피는

그래도 나를 움직이게 만드니까.

귀차니즘마저도 버릴 정도로.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하루가 조용히

가라앉아 버릴 것 같은 날은 더더욱.


이날의 상두그레이는

그래서인지

유난히 오래 남았다.


쑥 슈페너

하나를 향해 다녀온 하루가

다시 떠오르는 요즘,


또 한 번쯤은

비 오는 날이어도

사람 많은 주말이어도 괜찮겠다고.

커피 하나를 핑계로

먼 길을 나서 봐도 괜찮을 거라고.


잘 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무너지기 위해 움직이는 하루,


다시금,

나에게 요즘의 커피는

그런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