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곳, 낯선 공간에서

호두 정과와 어울리는 커피 한 잔, 새라울

by 이설


머리를 새로 하는 날이면

조금 다른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든다.

거울 속 얼굴은 그대로인데도 그렇다.

아주 사소한 변화가 사람을 괜히 들뜨게 한다.


그날은 그 들뜸에 이끌려

괜히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어졌다.

낯익은 동네 안에서, 조금은 낯선 곳으로.


연희동은 늘 차분하다.

번화하지 않고, 조금은 느리게 흐르는 동네.

나는 그 속도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새로운 곳에

인색해지기도 한다.


머리를 새로 한 날,

익숙한 길 대신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끝에서 새라울이라는 카페를 만났다.




외벽에는 시즌이 지난 산타가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계절이 지나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조금 귀여웠다.


문을 열자 통창 너머 작은 정원이 보였다.

아늑한 빛과 커다란 꽃 한 송이.

공간은 조용했고, 느긋함이 느껴졌다.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카페는

층마다 공기가 조금씩 달랐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동안

작은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지하 공간은 안개가 스민 듯 은은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

고요함이 공간이 된 것만 같다.

그 분위기만으로도 잠시 머물고 싶어졌다.



우리는 1층 안쪽 자리에 앉았다.

야외 공간이 보이는 자리였다.


아직은 추운 계절이라

저 밖이 비어 있었지만,

꽃이 피고 초록이 짙어지면

저 자리가 가장 먼저 채워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의 시그니처는

뜻밖에도 호두과자였다.

커피와 함께 먹는 호두과자라.

기대가 된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카운터에 놓인 유과 사탕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이 작은 간식 덕분에

기다림이 조금 더 달달해진다.


커피와 함께 호두과자

그리고 호두 정과가 나왔다.

이 정과가 참 요물이었다.

고소하고 달콤해서 자꾸 손이 갔다.


아메리카노는 산미가 강하지 않고 잔잔했다.

플랫 화이트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특별히 튀지는 않았지만,

정과의 단단한 단맛과 만나니

묘하게 균형이 맞았다.

서로를 조금 더 괜찮게 만들어주는 조합이었다.


시그니처 호두과자는 통 호두가 씹혔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빵이 부담스러운 날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호두과자보단 호두 정과가 더 매력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다를 떨었다.

사실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아닐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기분은 또렷하다.





커피의 추억은

맛으로 기억되기도 하지만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함께했는가가

때로는 더 깊이 각인되기도 한다.


그날 익숙한 동네에서 처음 만난 새라울은,


꽃이 피는 계절,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

단풍이 스며드는 계절,

그 모든 계절마다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계절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담아내는 이곳에서

좋은 사람들과 따뜻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잔잔한 이야기가 함께라면

그 자체로 하루가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날,

동네 한 편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연희동이 다시 한번 더 사랑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