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임이 걷힌 자리

단짠의 오후, 한옥카페 1인 1잔

by 이설



명절이 지난 지금

몇 해 전 추석이 생각난다.

사람 소리 나던 집이 비어버린 날이었다.


추석이 시작되기도 전,

식구들은 각자의 여행을 위해

집을 떠났고

그 명절의 초입 나는 일정을 마치고

가장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었을 때,

원래도 시끄러울 일 없는 명절이었지만

유난히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명절 끝나고 남은 전처럼,

조금 식어 있는 공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혼자 남았다는 사실이 외롭기보다

그 고요함이 좋았다.


함께 있을 때의 즐거움이 있다면

혼자 있을 때의 여백의 미도 있는 법.

왠지 자유롭게 느껴지는 그 여백이

즐거움보다

더 크게 느껴졌던 그런 명절이었다.





그렇게 비어버린 연휴에

시간이 남은 친구들이 하나둘 모였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조금 걷자고 했다.

단순한 이유로 단출하게 모였다.


한옥마을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서 핫하다는 카페 1인 1잔.

사람이 많을 걸 알면서도,

괜히 그날은 복잡함은 괜찮을 듯했다.

어쩌면

나는 이미 충분히 조용함을 즐겼기 때문일지도.


낮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 놓인 작은 소반이 괜히 귀여웠다.

뭔가 조금 불편한 듯하면서도

허리를 깊이 숙이지 않아도 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소소한 다름을 가진 카페가 재미있다.

크림 커피를 품은 한옥.

어울리지 않은 듯 어울리는.



나는 아인슈페너를 시켰다.

크림 위에 소금이 조금 올라가 있었다.

처음 한 모금은 부드럽고 달았다.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짰다.

그 조합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달기만 하면 질리고

짜기만 하면 지친다.

그 사이 어딘가가 필요하다.

그 어딘가를 찾는다는 게 어려울 뿐.


홀짝홀짝 그 단짠을 즐기다 보니

잔이 거의 비어 간다.

잠시 멈추어야 할 시간.

이 마지막 한 모금은

끝까지 욕심내지 않는 편이 좋다.

가라앉아 있던 소금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이제 단맛은 사라지고 쓴 맛이 남는다.

그날 나는 괜히 끝까지 마셨다가

혼자 얼굴을 찌푸렸다.



인생도 비슷하지 않나.

괜히 끝까지 욕심내다가

후회하는 순간들이.


살짝 비워내는 것,

욕심을 덜어내는 것도 용기라는

생각이 문득 올라왔다.


케이크를 조금씩 나눠 먹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오래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자주 웃었다.


그러다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통창 너머로 낮은 지붕들이 이어지고

그 뒤로 산이 보였다.

서울인데도 서울 같지 않은 풍경.


높은 건물 사이에서 살다 보면

하늘이 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건물 사이 하늘이 다인 것처럼.

탁 트인 전망을 보며 그날은 시야가 조금 넓어졌다.

숨도 같이 넓어지는 기분이었다.


도시는 늘 복잡하다고 말해왔지만

어쩌면 내가 늘 복잡한 길만 골라 걸었던 건 아닐까.

조금만 방향을 틀면

이렇게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데.





그해 추석은

누군가와 북적이던 기억보다

비어 있던 집과

그 빈자리를 채운 하루로 남았다.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당히 섞여 있던 날.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서 시작된 하루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채워졌다.


북적임이 걷힌 자리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날의 풍경이

지금도 마음 한쪽에

조용히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