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말야, 계획이 없어서 더 좋았어

일몰을 마시다, 카페 두운리

by 이설


조금은 오래된 겨울,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카페를 가기로 했다.


어딜 갈지 고민하다

추진력 좋은 동생 덕분에 드라이브를 겸해

강화도로 향했다.

일상의 여행이 시작된 순간이다.


무계획으로 떠난 소소한 여행,

그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곳이 바로 카페 두운리였다.




처음에는

조양방직이라는 카페를 가려했다.

강화도에서 유명하다는 이야기에

솔깃해졌다.

이런 곳은 왠지 꼭 가보고 싶어진다.

뚜벅이인 내가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또 가보나 하는 생각에.


그래서 가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러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곳의 광경에.


그리고 뒤이어,

어디선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에서 버린 게 다 여기 있나 보다.”


웃음이 팡 터졌다.

그 말이 어찌나 와닿던지.


고물들이 다양하게 꾸며진 모습이

어찌 보면

살짝 예스러운 놀이공원 같기도 하고,

고물상 같기도 하고.


내부로 들어가니 또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이 붐비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원했던

한적하고 여유로운 결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서 사진만 몇 장 찍어보고 턴.

그렇게 나와 발견한 곳이 바로

두운리였다.


카페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나니,

아직 녹지 않은 눈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 뒤로 통유리의 현대적인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다.

오, 여기도 크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시선을 끈 건,

80년대에나 볼 법한 티브이였다.


지지직—

그 특유의 화면.

무지갯빛이 스미는 듯한

아날로그 감성이 남아 있었다.

그 옛날 화면 조정 시간 같은 느낌.

그 안에 있는 우리들.


그 순간, 동요가 떠오른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정겨운 시간을 지나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탁 트인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화이트 톤에 블랙이 더해진 단정한 분위기였다.


2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본 1층은 또 다른 느낌.


테라스도 있었는데,

따뜻해지면

가장 먼저 떠오를 자리 같았다.

야외에서 바람을 느끼는 건 역시 낭만이다.


아직은 서늘했지만

서울보다는 확실히 숨이 가볍다.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카페를 둘러본 뒤

두운리의 시그니처

옥수수 크림라테를 주문했다.


잔을 받아 들었을 때,

그 안에 해가 들어 있는 듯했다.

해가 질 무렵의

어두운 주홍빛 아래

둥글고

어두운 노랑이 담겨 있었다.

일몰 같았다.

커피 한 잔에 하늘이 담긴 느낌이다.



그런데,

한 모금 마셔보고는 잠깐 멈췄다.


아뿔싸.


커피가 아니구나.


옥수수의 단맛과

바삭한 식감이 나쁘진 않았지만,

나는 커피를 원했다!


잠깐 고민하다가 내려가 물었다.

샷 추가만 되냐고.

가능하다는 말에 한 샷 추가.


드디어

일몰에, 밤이 내려앉았다.


그제야 균형이 맞았다.

달콤함 위에 씁쓸함이 얹히면서,

비로소 내가 원하던 맛이 됐다.







계획 없이 떠난 소소한 여행.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 예상하지 못한 순간을 만났다.

어쩌면 계획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원래 가려던 목적지를 지나

우연히 들어온 곳에서,

오히려 더 오래 남을 시간을 보냈다.


날이 따뜻해지면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온실이 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던 아쉬움 때문에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온실도 들러 조금 더 천천히 머물다 와야지.


통창으로 쏟아지던 햇살,

싱그러운 공기 속에서

조용히 흘러가던 시간.


그런 순간이 오래 남는다.


따뜻한 봄이 다가오는 요즘,

문득 그날이 떠오르는 걸 보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