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편보다 길었던, 우리의 에필로그

이제는 익숙한 성수에서, 에필로그카페

by 이설



한 번 발을 들인 후

성수는 내게 꽤 가까운 곳이 되었다.

번잡한 듯 한가하고,

묘한 여유가 있는 곳.




한 해의 초입,

모임이 시작되었다.


평일에는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과

시간을 맞추다 보니

주말을 피할 수 없었고,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동선을 맞추다 보니

그날의 모임은 성수로 정해졌다.


주말이라 괜찮을까

살짝 걱정을 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

성수의 주말은 생각보다 느긋했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마쳤다.


카페를 찾아 나설 때쯤에서야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이제 붐비겠구나 싶었던 건.

살짝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던 것도.


조금 걱정이 들었다.

‘우리 다 같이 앉을 수 있는 카페 있을까?’


일행이 많다 보니

편하게 앉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군데를 돌아봤지만

역시나였다.


이대로면

그냥 헤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는 순간,


에필로그 카페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깔끔하게 정리된 넓은 공간이 펼쳐졌고,

그제야 한숨이 놓였다.


우리를 모두 품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공간이

유난히 반가웠다.


겨울 분위기가

은은하게 깔린 공간에는

여유가 잔잔하게 퍼져 있었다.


괜찮다, 여기.


모두의 얼굴에

비슷한 표정이 스쳤다.


메뉴를 고르기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음료 종류가 다양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커피 메뉴들.


각자 음료를 고르고,

일행 중 한 분이

빵도 함께 주문했다.


내가 고른 건

역시나 시그니처

오란프레소.


나의 시그니처 사랑이란.

이렇듯 한결같다.


추운 날이라 따뜻한 음료를 고민했지만,

눈에 들어온 비주얼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원두를 고르는 순간.


크림이 올라간 커피는

보통 고소한 쪽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늘 산미 있는 쪽을 고르게 된다.


습관처럼.


오렌지와 산미가

오히려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했고.


자리를 잡고 주문까지 마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제야

주변에 디피 된

캠핑용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카페와 캠핑이라.

이 조화 신선한데!


알고 보니

카페에서 함께하는 팝업 스토어다.


그 덕에

처음엔 한가했던 공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에게 집중했다.


잠시 후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각자 앞에 놓인 음료들이

작은 전시품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문한 오란프레소는

앙증맞은 크기에

세련미가 넘친다.

자연을 품은 도시 같달까?


크림과 함께 마신 커피에서는

은은하게 오렌지 향이 올라왔다.


느껴질 듯 말 듯한 향이

부드럽게 퍼졌다가

끝에 가서 가볍게 남았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데도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조용히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가끔은

이런 한 잔이

기분을 바꿔놓는다.


맛있는 한 잔과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가 길어진다.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시간이 괜히 더 잘 흐른다.





카페 이름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에필로그.


어떤 이야기의 끝에 붙는

짧은 이야기.


때로는

그 짧은 후일담이

본편보다 더 오래 남기도 한다.


식사가 본편이라면

카페는 그 뒤에 이어지는

에필로그 같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언제나처럼

에필로그가 더 길었던 그날,


그 공간의 이름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이름도, 분위기도

조용히 스며들었던 시간.


그날,

에필로그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