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마도로스를 꿈꾸다
마지막날 아침은 모든 게 예술이었다.
정말 티하나 없이 맑은 하늘은 여수를 눈에 가득 담아도 모자라게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조식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호텔의 체크아웃 전 그동안 둘러보지 못했던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정말 어디를 찍어도,
심지어 나 같은 똥손이 찍어도 찍는 사진마다 예술이다.
왜 자연이 위대한지,
자연만 한 배경이 없고 어떠한 인공 조명도 자연에는 댈 것도 아닌 것이 되는지를 여실히 느낀 날이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펼쳐지는 듯한 그 여수의 하늘과 바다.
그리고 그 고즈넉한 듯 여유로운 공기가 눈앞에 떠있는 것만 같다.
다시 가면, 볼 수 있을까? 정말로?
이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또다시 여수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부모님도 그 모든 광경에 감탄하셨다.
서울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맑은 공기를 폐 안 가득 채우고 걸으며(물론 마스크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산책길 자연을 사치스럽게, 원 없이 누렸다.
사람도 없으니 마치 모든 공간이 우리의 것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매 순간이 좋았지만, 그 마지막날은 하나의 작품, 어느 캠버스에도 담을 수 없는 작품을 한가득 만끽하고 온 기분이 든다.
아침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체크아웃까지 시간이 좀 넉넉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날씨가 아깝다는 생각에 요트를 타기로 했다.
사실 호텔 예약할 때 2장의 할인 티켓을 받았는데, 세 사람인지라 안 하기로 했다가 아빠는 운전도 해야 하니 조금 쉬시겠다며 둘이 다녀오라고 하셔서 엄마와 나 둘이 타게 되었다.
이것도 나에겐 첫 요트였다.
다행히 탈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냉큼 예약을 하고 대기를 했다.
생각보다 우리가 타는 요트는 작았다.
인원에 따라 배정이 된다는데 요트 신청 인원이 생각보다 적었나 보다.
작으니 살짝 아쉬웠는데, 이게 또 작으니 장점이 있다.
후에 여행에서 요트를 타볼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여수에서의 이 요트가 가장 재미있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이 있었다.
무척 빠르게 운전을 하니 바람이 얼굴을 때리는데 그게 엄청 상쾌하다.
물살을 가르는 기분이 마치 마도로스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우리 엄마는 겁도 없다.
빠르게 움직이는 요트 머리로 가서 한껏 분위기를 내시며 나에게 사진을 찍으란다.
요트 탄 일행 중에 가장 연세가 있으셨는데 가장 용기가 있으시다.
안내원이 가서 사진 찍으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던 사람들이 엄마의 멋진 포즈를 보더니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멋지다, 울 엄마!
생각보다 울 엄마가 액티비티를 즐기실 줄 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 용기 가득인 엄마를 보고 나도 질 수 없어서 사진 한 장.
뱃머리에서 보는 바다는 더 멋있다.
요트의 돛이 활짝 펴져서 바다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분이 정말 상쾌하다.
아침, 푸르른 그 바다와 하늘 하얀 물보라 코 끝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의 콜라보.
그때만큼 완벽한 요트는 없다, 지금까지도.
게다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크게 웃음이 났다.
엄마! 최고야!
활짝 웃으며 이거 안 탔음 후회했겠다! 하시는데 그 모습이 정말 어린아이처럼 해맑다.
여수의 여행에서 가장 많이 본 건
두 분의 동심 어린 얼굴이었다.
삶이 비록 빡빡해도 나이가 들어도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 같은 감성 하나쯤은 품고 산다는 걸
다시금 느낀 시간이었다.
여수,
그 푸르르던 그날은 그 요트를 내려오면서 끝났지만, 기억 속에 청명한 하늘과 바다는 오래오래 사진처럼 남아있다.
아직은 여행이 거창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지는 때였어도,
그래서 그 모든 동선들이 어그러질까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있었어도,
그때의 날씨, 그때의 기분 그때의 감정들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나의 첫 여행이야기, 여수는 여기서 여정이 끝났지만, 우리 셋의 여행은 아직 남았다.
이제 에필로그의 이야기만 남기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지금,
여수로 다시금 여행을 가는 상상을 해본다.
기록은 기억을 빛나게 하고 그 빛나는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행복이라는 챕터 속에 넣어놓고 늘 꺼내 보고 싶은
나의 여수.
그리고 우리의 여수.
안녕.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