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프롤로그), 비행기 타고 가요
막간 휴식을 끝내고 잠시 국내여행의 이야기를 접고 조금 더 멀리 나가보려 한다.
나의 해외여행의 시작이 된 필리핀 이야기로.
사실, 해외여행에 대한 내 경험은 미미하다.
몇 개의 도장을 받은 여권조차 없다.
정확히 말하면, 10년짜리 여권을 받아놓고 그대로 유효기간이 한참 전에 끝나버렸으니까.
그래도 그 덕에 신여권을 만들었으니, 요건 좀 좋다.
디자인도 괜찮고.
그만큼, 해외여행은 내게 오래도록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조심스러운 희망 사항 같은 거였다.
그냥 가면 되는 거지, 뭐가 그렇게 망설여지냐고 한다면,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 나는 여유라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마음에도 통장에도.
그래서 쉽게 떠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엄청난 결심을 하고홀로 해외여행을 꿈꿨다.
그런데 그 타이밍에 세상이 문을 닫았다.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한번 막히고 나니, 그 마음을 다시 다잡는 일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그렇게 나의 해외여행의 꿈은 자연스레 사그라들었고
다시, 여유 없는 내가 된 거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꿈을 막았던 코로나 시기,인생의 변환점을 맞으며 오히려 그 꿈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마음을 먹었어?
지금은 좀 나아져서?
라고 묻는다면,
솔직히 말해, 그다지 다르진 않다.
여유가 없는 건 같은데 작년 나의 마음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
변곡점의 변곡점이랄까?
몸과 마음의 균형이 흐트러지면서 만들어진
‘이대로 살면 정말 후회하겠구나’ 싶은 마음의 균열.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용감해졌다.
그렇게 용감하게 시작한 여행이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몇 차례 이어졌다.
삶이란, 참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처음 계획했던 곳은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였다.
"언니, 저 반딧불 보고 싶은데 코타키나발루 갈래요?"
내 글에 종종 등장하는 동생의 제안이었다.
정말 1분 컷 고민을 하고
"가자!"
그 말과 동시에 딱 2자리 남은 상품을 예약했다.
와! 해외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일주일 후에 그 사태가 발발했다...
티메프.
불안한 마음에 여행사에 연락해 본 결과 기다리라고는 했지만, 역시나 취소. 환불도 불투명한 상황이라
허무했다.
이 허무가 오기를 발동시켰다.
"언니! 전 어디라도 가야겠어요~ 너무 억울해요!"
"오냐. 나도 그렇다. 어디라도 가자!"
그렇게 해서 열심히 발품, 아니 손품 팔아 가성비 좋은 여행을 알아본 게 바로 필리핀 보홀 되시겠다.
나의 필리핀 보홀은 그렇게 엉겁결에 급발진으로 결정된 곳이었다.
보홀 여행을 앞두고 우리의 일행은 2명에서 4명이 되었다.
코타키나발루야 여유가 없었지만, 보홀은 아직 모집 초반이라 여유가 있어 우리는 일행을 더 모으기로 했고
그렇게 4명의 여행이 되었다.
여자 친구들과의 여행.
이 말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껏 여자 친구들과 멀리, 오래 함께하는 여행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여행은, 나에게 모든 첫 경험의 시작이었다.
함께 할 일들을 알아보고, 함께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조금은 못해서 헤매는 것들도 즐거웠던
준비하면서부터 깔깔거리기 바빴던 보홀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비록 가성비여행인지라,
늦은 밤에 출발해서 새벽에, 이른 새벽 출발해서 이른 아침에 돌아오는 비행기였고 호텔은 기대를 버려야 했던
패키지였지만,
함께라서 그 모든 게 좋았던 여행.
이제 그 여행의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려 한다.
되짚어보는 나의 첫 필리핀,
그곳의 햇살과 바다, 그리고 피어난 웃음꽃의 시간들.
그 이야기를 이제 천천히 꺼내보려 한다.
*혹시 티메프 사태의 결말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결국 환불받았어요~~ 해피엔딩입니다!
필리핀 이야기는 조금 길어집니다.
여유롭게 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