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보홀 (1) 나의 마음을 울린 첫 만남
새벽이 되어서야 비행기는 필리핀 보홀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가이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호텔로 픽업.
우리는 사실 호텔에는 그렇게 기대가 없었다.
애초에 가성비 패키지인 데다 호텔의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그래도 생각보단 최악은 아니다.
도착해서 본 호텔은 나름 깔끔하고 직원들도 친절하다.
물론, 조식은 조금(사실 많이) 부실하고, 청소등의 서비스도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4시간 반이라는 어쩌면 길지 않은 이 비행에도 몸은 피곤했다.
씻고 자야 하기에 다른 것을 신경 쓸 여를 없이 후다닥 씻고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음날 첫 일정은 다행히 이른 시간이 아니었기에 조금이나마 더 잘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보홀의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이국적인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는 없지만, 야자수는 있다.
바나나 나무도.
그 풍경을 보며 길을 살짝 걸었다.
맛있는 열대 과일들이 보인다.
아 내가 정말 외국을 왔구나.
그제야 실감이 난다.
해방감?
그런 느낌이었다.
힘들게만 느껴졌던, 아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타국으로의 여행이 이렇게 이루어지는구나 싶은 생각에 묘한 희열과 함께.
공기부터 다르다.
그저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벅차다.
그렇게 마냥 날이 좋을 줄 알았는데..
보홀에서의 첫 일정은 시내투어.
안경원숭이와 초콜릿힐을 가는 여정이다.
이 여정은 무척이나 고단했다.
버스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강한 자만 운전할 수 있는 필리핀의 도로를 정말 온몸으로 느꼈다.
중앙선의 개념은 사라지고 없으면, 비포장도로는 정말 극악의 승차감을 선사했다.
이 버스를 한 시간가량 타는 동안 워치에 찍힌 걸음이 거의 2만이 채워진 전설 같은 일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분명 아침에는 맑았던 하늘이 보홀의 팔라우섬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니 흐려지기 시작한다.
약한 비가 흩뿌려졌다.
가이드왈, 장점이란다.
걸어야 하는데 땡볕이면 너무 힘들다고.
맞다.
안 좋아 보이는 것들도 그 이면에는 언제나 좋은 것을
품고있다.
흐린 날, 살짝 내리는 비 덕분에 그렇게 덥지 않은 것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한참을 달려 안경원숭이가 있는 공원에 도착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눈이 커다랗고 꼬리는 쥐 같아서 살짝
징그러웠는데 직접 보니 얼마나 앙증맞은지.
야행성들이라 나무 한구석에 매달려 잠을 자고 있는
이 주먹만 한 생물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간혹 눈뜨고 있는 아이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이 코스의 메인이벤트이다.
잠시의 안경원숭이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공원을 나와 초콜릿힐을 향했다.
비가 살짝 오는 듯 마는 듯 안개가 내려앉은 날씨는 이 초콜릿힐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정말 말로 설명하고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그 웅장한 언덕들이 안개에 잠겨 있는 모습이 원시림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감동.
열심히 카메라에 담지만, 담아지지 않는 그 감동은 마음과 눈으로만 간직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저 광경을 내 눈에 고스란히 담아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좋을까?
내 눈이 아닌 것들엔 담기진 않는 자연을 보면
늘 이 생각이 든다.
아쉽다.
초콜릿힐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생긴 언덕만큼
상징적인 것이 바로 이곳에 있는 계단 되시겠다.
214개라는데 보수하면서 몇 계단이 늘었다고 한다.
그 계단을 오르면 초콜릿힐의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크고 작은 키세스 언덕들이 섬 같은 모습으로 숲사이에
떠있는 듯한 느낌.
그 옛날 공룡의 시대에 이런 분위기였을까?
고대 원시림. 자연이 그대로 숨 쉬고 있는 곳.
나는 필리핀에서 이 느낌을 참 많이 받았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아있지만, 그럼에도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는 것만 같은 그 풍경을 보며
살짝이지만 정글을 경험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달까?
첫날의 필리핀의 자연은 반짝이는 푸르름은 아니었지만, 고요히 비밀을 품은 듯 고혹적이었다.
마음 깊은 울림을 준 필리핀에서 나의 여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