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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스페셜 한 우리의 저녁, 그 여유

필리핀 보홀 (2) 커피 한 잔의 여유와 빛나는 반딧불

by 이설


시내투어를 마치고 다시 팡라오섬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선택 관광을 ‘스페셜’하게 선택한 터라, 첫날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렇다고 전혀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리는 틈틈이 소소한 여유를 즐겼다.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살짝 선택의 기로에 섰다.

호텔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올 것인가, 아니면 이 시내 한가운데 앉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것인가.


조금 쉬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여유롭게 쉴 시간은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결국, 가이드의 추천을 받아 필리핀 커피 맛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타국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라니.

이거, 생각보다 꽤 설렌다.

커피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필리핀 커피의 맛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우리가 간 곳은 샤카라는 카페였다.

커피 맛집이라더니, 막상 가보니 브런치 감성이 물씬 나는 비건 카페.

요거트 맛집이기도 한 듯했다.

그래도 남국의 분위기가 확 느껴지는 인테리어와 공기 덕분에, 공간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라떼를 주문했다.

비건 카페답게 기본 우유가 오트밀크라서 더없이 반가웠다.

유당불내증이 살짝 있는 나로서는, 라떼를 주문할 때 항상 우유를 바꿀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조차 없으니 왠지 작은 이득을 본 기분.


주문하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고.

그 짧은 순간마저 알차게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필리핀 커피가 내 앞에 놓였다.

비주얼 합격.

이제 진짜 한 모금.



고소한 향과 함께 커피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음, 맛있다.

그런데... 약간 아쉽다.

내게는 조금 연한 느낌.


그래도 이 한 잔, 참 소중하다.

여행 내내 제대로 된 커피는 이게 마지막이었으니까.

사실 괜찮은 카페가 있었어도, 우리가 들를 시간은 없었을 거다.


왜냐고?


우리는 ‘스페셜 패키지 선택관광’을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짧은 여유를 마치고,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이번 목적지는 반딧불 투어.


사실, 처음 계획은 코타키나발루였다.

그곳의 반딧불을 꼭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무산됐다.

그래서 이번 투어는 어쩌면 작은 운명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곳 반딧불이 최고란다.

코타키나발루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나.


믿어야지.


도착한 곳은 강가의 나무 평상 같은 데,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저기 앉으세요’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는데, 알고 보니 그 평상이 배에 실려 있었다.

그걸 타고 강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며 반딧불 명소를 둘러본다.


가이드의 설명이 이어졌지만, 반딧불이 반짝이기 시작하자 어느새 귀는 닫히고 눈만 열렸다.

와.


정말 예뻤다.

나무 위를 금빛 조명으로 장식한 것처럼, 풍성하게 반짝이는 모습은 숨 죽여 볼 만큼 아름다웠다.


이렇게 예쁜 빛은 처음 봤다.

인공 조명에 익숙한 요즘 자연의 반짝임은 수수함의 어름다움이 주는 감동이 있다.


별이 반짝이고, 반딧불이 반짝이고.

자연의 불빛은 도시의 그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리는 것 같다.



“너무 예쁘다!”를 연발하며 감탄했지만, 돌아보니 그 순간 내 어휘력이 참 부족하게 느껴진다.

‘예쁘다’라는 말 외엔 이렇게 표현 할 말이 없었다니.


과연 또 한 번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을까?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서라야, 겨우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점점 사라져가는 자연이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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