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소다의 Mind 칼럼 #1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극도로 예민한 환자를 대하는 대형 병원의 응급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던 나는
사람과 사람 간에 진심 어린 대화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많다. 그 때의 기억을 하나씩 되새겨보고자 한다.
환자를 잘 돌보고 살리는 것이 의사의 임무이건만, 이미 생사의 경계선을 넘은 사람들에게 때로 의사는 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할 때가 있다. 특히 하루에도 여러 번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하는 일이 많은 나는 매일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자주한다.
연일 뉴스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 1위라며 자살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불과 2~3년 전보다도 자살 시도자가 훨씬 많이 늘어난 것을 실감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외롭고 마음이 아팠으면 그랬을까? 한 번만 눈을 더 마주치고 손을 더 내밀었더라면,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은 위기의 순간에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주변에 한 명만 있었더라면!’
그런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마음이 벼랑 끝에 매달려 있던 사람들.
이미 죽음 가까이 한 번 혹은 여러 번 다녀 왔기에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자연스레 그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그들이 더는 불행한 자가 아닌 이미 행복하고 주변에도 행복의 기운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음을 우리는 함께 느꼈다.
이제 나의 환자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들을 해볼까 한다.
팍팍한 응급실 근무에 지쳐 있을 무렵인 몇해 전 가을, 나는 중환자실에서 인생의 벼랑 끝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죽고 싶어했으나 본인의 계획이 실패한 혹은 안타깝게도 그 계획대로 자살에 성공해버린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많은 만남 속에서 나는 그들에게 새로운, 그리고 신선한 처방을 내리는 습관이 생겼다.
죽음을 맞는 두 부류
자세히 보면 병원에 오는 사람은 크게 병이 있어 살고 싶어 오는 사람과 병과는 상관없이 죽지 못해 오는 사람으로 나뉜다. 후자는 의사가 살려도 문제다. 일례로 극약을 먹고 상태가 위중해져서 온 환자를 열심히 치료해서 일상 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 퇴원시켰는데 며칠 뒤 한강에 투신 자살을 해서 시신이 되어 다시 병원에 온 적이 있었다. 그럴 때, 의료진은 안타깝고 허무하다.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라도 생명의 끈을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병원은 국가에서 정한 '중독 전문 센터'로 독극물이나 약물 중독 환자를 입원시키는 중환자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나는 당시 그 중환자실을 담당하고 있었다. 인공 호흡기를 달고 의식이 없는 채 누워 있는 환자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약을 실수로, 혹은 일부러 먹어서 오는 환자들도 많다. 사실 우리 중환자실 입원 환자의 상당수는 극단적 선택 시도 환자들이었다.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한 여인
40대의 초반의 나이로 혼자 사는 여성이 병원에 실려 왔다. 그녀는 이미 심한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고, 그날은 죽고 싶은 마음에 신경 정신과에서 처방받았던 약을 한꺼번에 먹었다고 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의사인 나에게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빈번한 자살 시도는 본인이 이전에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한꺼번에 먹고 오는 것이기에 처음에는 늘 봐오던 경우라 생각했다. 그녀의 가족들은 꽤 부유해 보였지만 경직된 모습이었다.
특별한 해독제가 없는데다 환자 상태도 멀쩡하고 피 검사 결과도 정상이어서 며칠 뒤 우리는 그녀를 중환자실에서 정신과 병동으로 옮길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가족들은 정신과에 간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느냐며 회의적이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다는 의료진의 설득에 결국 과를 옮기기로 했다. 후에 그녀의 부모님이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어서 그 약을 같이 먹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으나 확실치 않았으며 며칠이 지나도 그와 관련된 증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막 환자의 침대를 옮기려던 중에 갑자기 그녀의 맥박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며 순식간에 의식도 없어졌다. 가능한 응급 처치를 급히 시행하고 보니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의지해야만 하는 상태였고 의식도 없는 채로 심장은 아무리 약을 써도 터질 듯하게 뛰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어떤 의사라도 부담스러울 중환자가 되어 있었다.
복용했던 약으로 인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의 증상이 뒤늦게 나타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었지만 의학적으로 일어나기 어려운 경우였다. 사실 전 세계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만큼 이전의 사례가 드물었기에 연구결과라고 나온 것도 없었고 의료진들은 처음 경험하는 상황을 두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도박에 가까울 만큼 시도해 보았다. 절대로 회복될 것 같지 않았던 그녀가 인공 호흡기를 떼고 몇 주 뒤 의식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한 것은 기적이었다. 그녀가 깨어나고 나는 이 사연 많은 가족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만 부족했던 유능한 딸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의 꿈은 딸을 영부인으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흔히들 부모는 본인이 이루지 못했던 것을 자식에게 해주고 싶고 자식이 그것을 이루길 바란다.) 그러다 보니 어려서부터 온갖 좋은 교육은 다 받고, 수 차례의 외국 여행에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경험도 많이 했던 그녀였다. 아버지는 딸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본인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고, 어린 시절 가난으로 무시당했던 것들에 대한 한을 풀고 싶었던 게다. 그녀는 똑똑했고 곧잘 따라가는 듯했으나 그럼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완벽주의 본능은 딸을 지치게 하였고 어느새 그녀에게 아버지는 부담과 두려움의 대상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본인은 열심히 노력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그녀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했지만 아버지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그녀. 부녀는 점차 대화가 없어졌고 그녀는 의대에 진학했다가 적응을 하지 못해 자퇴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이후에는 평생 아버지를 원망하며 지냈다.
아버지는 딸을 사랑했지만, 그래서 완벽하길 바랐지만 딸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점차 가족 간에 벽이 생겼고 수십 년의 세월 동안 그 벽은 점차 두꺼워져서 서로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심한 우울증과 무기력증으로 인해 어느 직장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그 뒤에는 ‘결국 나만 없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중대한 결심까지 하게 되었고 하필이면 남들이 잘 먹지도 않는 그녀의 병을 치료해주던 약까지 한꺼번에 먹게 되면서 치료약이 독약이 되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몸의 회복보다 빨랐던 마음의 변화
나는 극적으로 새로운 삶을 얻은 그녀에게 나는 당시 읽고 있던 에세이를 한권 선물했고 우리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그녀도 긴 중환자실 생활에 지친 탓인지 마음을 쉽게 열어주었다.
이후 그녀가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기고 나서도 나는 자주 그녀의 병실을 찾았다.
가끔 아버지와 단둘이 병실에 있을 때면 그녀는 긴장되어 보였다. 높이 쌓인 마음의 벽은 건축물의 담장을 허무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리라. 하지만 오히려 병원에서의 시간을 통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의 얼굴에는 차츰 미소도 생겼고, 어색하지만 아버지와 짤막한 대화라도 시작하게 되었다. 하루는 병실에 들렀다가 부녀의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어색해하며 쭈뼛대던 그들이 한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포착해서 찍었다. 같은 마음으로 함께 나아가는 길,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소중한 사람과의 동행은 아름답다.
그녀는 몇 주간의 재활 치료를 하고 나중에는 걸어 다닐 수도 있게 되었다. 치료 초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녀는 줄곧 새로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늘 불행하다고 말하던 그녀가 행복하다고 말하기까지,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까지 그 마음의 변화는 내게 그녀가 다시 걷는 것보다도 더 큰 기적으로 다가왔다. 앞으로 그녀에게 어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지가 기대되었다.
마음을 열고 대화해보라
가까운 사람일수록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을 때 더 고통받고 서로 상처주기 쉽다. 그때 그때 작은 이야기라도, 부끄러운 이야기라도 마음을 표현하지 않으면,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져서 서로의 마음이 흐를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오늘, 즐거웠던 이야기든, 부끄러웠던 혼자만의 비밀 이야기든 작은 것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이야기하며 다가가 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가족이기에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마음만 통한다면 나의 부족함은 더 이상 부끄럽지도, 문제되지도 않을 것이다. 문제는 ‘나’라는 울타리에만 갇혀 있을 때 더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