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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osmos Sep 16. 2024

사랑을 전하고픈 마음.

I love you라고 답해줄게. 

 모처럼 만의 쉬는 날, 친구가 일하는 카페에 놀러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을 가면 친구가 산다. 친구가 최근에 일하기 시작한 카페에 놀러 오라며 초대를 했고 나는 간 김에 지난번 멕시코 비행에 갔다가 사 온 초콜릿을 선물해주려고 가져갔다. 친구가 내려 준 커피를 마시고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뒤늦게 생각이 났다. 내가 깜빡 잊고 가져간 초콜릿을 친구에게 주지 않았다는 걸. 나는 다시 돌아가서 줄까 하다가 다시 돌아온 길을 걸어가는 게 그 날 따라 먼 길처럼 느껴졌다. 오늘만 날도 아니고 다음에 주자 싶어서 돌아가지 않았다. 


 친구의 동네는 인도 이민자들이 모여 살아서 인도타운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거리마다 인도음식점과 디저트 가게들이 많다. 주택가도 듬성듬성 끼여있어서 적당히 번화하면서도 거리를 거니는 주민들의 모습도 보인다. 그날도 그랬다. 어느 주택가에서 번화가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어느 집 현관 앞 계단 위에서 7살~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인도 아이들 셋이 옹기종기 앉아 무릎 위에 종이를 얹고 낙서를 하며 노는 게 보였다. 속으로 귀엽네, 하며 지나쳐 모퉁이를 돌아 횡단보도가 파란불로 바뀌길 기다리는데 한 예닐곱 살쯤 되어 보이는 인도 여자아이가 달려오더니 내 앞에 섰다.  

그러더니 내게 반으로 접은 공책 한 장 위에 ‘I love you.’ 라고 쓴 종이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It’s free, I just want to give you love.” 

 "공짜에요. 저는 그저 당신에게 사랑을 주고 싶을 뿐이랍니다."


 나는 그 쪽지를 살며시 펼쳐 보았다. 삐툴빼툴한 글씨로 I love you가 더 쓰여 있었다. 


아이가 건네준 쪽지
쪽지를 열어보니. 


 내가 Thank you 라고 말했다. 아이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미소를 짓더니 내가 더 말할 새도 없이 자기가 온 길을 뒤돌아 뛰어갔다. 아이는 내게 ‘공짜에요’라는 말을 먼저 했다. 혹시라도 자기가 댓가를 원해서 그 쪽지를 주는 줄 알까봐, 그래서 열어보지 않을까봐 아이는 그렇게 말한 걸지도 모른다. 길거리의 행인에게 아이들이 다가와 보통 뭔가를 팔려고 하거나 얻으려고 오는 경우가 있다. 자주는 아니지만 미국에서도 그런 일이 종종 있으니까.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자 나는 쪽지를 손에 들고 길을 건넜다. 그런데 그 순간 머릿 속에 동화책 한 권이 번뜩 떠올랐다. 돈 대신 체리씨 여섯 개를 건넨 아이에게 사탕을 잔뜩 건네며 거스름돈 까지 챙겨 준 사탕가게 할아버지가 나오는 동화책.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였다.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그러고는 그 아이가 앉아있던 길 가의 계단으로 향했다. 아이는 나를 보고 놀란 듯 했다. 내가 가방 속에 있던 초콜릿 봉지를 건네주며 말했다. 


 “This is free, too. I wanna give this to you in return of your love letter, Thank you.”

"이것 역시 공짜야, 네가 러브레터를 주었으니 그 대가로 난 이걸 주고 싶은 거야, 고마워."


그러자 그 아이의 눈이 갑자기 ‘장화신은 고양이’에 나오는 푸스처럼 슬픈 눈을 지으며 난감한 듯 말했다. 


 “It’s okay, I promise, I promise.”

 "괜찮아요. 믿어주세요. 믿어주세요."


 내가 건넨 초콜렛 봉지를 받지 않은 채, 믿어주세요 이러려고 드린게 아니에요, 라고 말했다. 오히려 옆에 있던 두어살 더 많아 보이는 언니인 듯 보이는 아이가 좋아하는 표정을 미처 숨기지 못하고 활짝 웃으며 ‘Thank you’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게 편지를 건넨 그 여자아이는 받을 수 없다는 듯 곤란한 눈빛을 지으며 I promise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내게 그 아이의 마음이 너무나 어여뻐보였다. 나는 그 아이의 손에 초콜렛 봉지를 꼭 쥐어 주었다. 그러자 아이의 얼굴에 조심스레 미소가 살살 번졌다. 


 순간, 동심을 의인화 한다면 이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모락모락 피어나 내 마음을 간질였다. 


 가방에서 초콜렛 한 봉지가 빠져나갔기 때문일까,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내내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의 장면들이 생각났다. 나도 이런 따뜻한 동화를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그 아이의 편지를 받고 그 동화가 떠오르지 않았다면 가방에서 초콜렛을 꺼내어 그 아이에게 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냥 지나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한 편의 이야기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그 따듯함을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준다.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건넬 때, 어른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동심에 화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체리 씨 여섯개로 위그든 씨에게 달콤한 사탕을 사갔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자신의 물고기 가게에 온 꼬마 손님을 보며 '위그든 씨'를 떠올렸듯이. 잊지 않고 꼬마손님에게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대로 베풀어 준 것처럼. 왠지 그 아이는 그런 어른으로 자라날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그 아이의 말대로 사랑은 공짜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서로에게 사랑을 건네는 일에 박하다. 꼭 물질적이 아니라도 사랑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저마다 있지만 나와 같은 어른들은 그 방식을 자주 잊는다. 그 순간에 내가 생각해낸 방법은 가방 속의 초콜렛이었다. 내 가방에 공책과 펜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나 또한 공책에 ‘I love you’라고 적어서 아이의 마음에 같은 방식으로 화답할 수 있었다는 걸 뒤 늦게 깨달았다. 그랬다면 아이가 덜 난처했을 텐데. 나도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보다. 그래도 괜찮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면 되는 거니까. 사랑한다는 달콤한 말이든, 사랑을 담은 편지이든, 달달한 초콜렛이든. 중요한 건 전하는 마음이니까. 


 나는 이 세상에 사랑을 전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일을 택했다. 내가 쓰는 동화에 사랑과 따뜻함을 담아 여태껏 내가 받아 온 사랑을 세상에 화답하고 싶다. 온 마음으로 사랑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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