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해방의 열쇠는?
사회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사건들을 모두 떠나 어떤 한 개인의 업장이 형성되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허용되지 않아 그것들을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는 그만큼 주변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도 좋을 만큼 안전한 공간과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한다. 만일 그 사람이 눈치 보지 않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내면에 업장이 쌓일 확률도 낮아진다. 문제는 어떠한 이유로 (주변의 신념과 가치관, 사회의 문화와 구조등의 내면화로) 생각이 고착화되어 스스로를 억누를 때 업장이 생기기 쉽다. 특히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일수록 자신을 억누르게 되어 나중에는 자신의 감정조차 잘 알기 어려워진다. 결국 입이 있으나 말하지 못하는 '심리적 벙어리'가 된다. 이렇게 될 때 사람은 마음의 병을 쉽게 얻게 되는 것 같다.
무섭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는 아이가 눈치 보며 자라기 딱 쉬운 환경이다.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 느끼고 알아차리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생존해야 하는 방어기제가 작동해 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어른들의 분노에서 벗어날지 그것부터 연구하게 되고 피하는 법부터 익히게 된다. 자신의 감정은 그때마다 억누르게 된다. 그것들이 자라면 자랄수록 차곡히 쌓여 결국 내면의 병을 얻게 되나 자각증세가 없으면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보통은 어느 정도 크고 작은 중독에 빠져 지내며 회피하거나 남들도 그 정도는 다 있으니까 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억지로 살다가 결국에는 내면의 힘을 잃고 우울증으로 발전하여 자신의 생명을 해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상태로까지 가게 되는 경우가 현시대에는 특히나 많다. 그래서 상담실도 가보고 정신과도 가서 약을 처방 반기도 하지만 진정한 해결책은 잘 되지 못한다. 잠시 고통을 덮어두고 조절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어쩌면 이 정도도 사회를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할 수 있는 최선인지도 모른다.
사실 한 개인의 뿌리 깊은 업장을 풀어내려면 길고 긴 시간 함께 할 수 있는 '깨어 있는 안전한 동반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보통은 심리 상담사가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 있지만 내담자에게 이렇게 할 수 있으려면 상담사의 개인의 역량이 요구된다. 상담사가 내담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서로 관계를 이어갈수록 내담자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역동들을 알아차리고 구별하여 서로의 감정들을 허용하는 고요한 평정심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사실 많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업장을 해결하고자 하는 내담자의 용기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심리상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고통들을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마주 본다는 의미인데 보통은 자신의 고통들을 제3자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에 심한 거부감이 있고 아예 상담자체를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는 그런 거부감이 잘 생기지 않는 상대적으로 자기와 맞는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된다. 그런데 이것 또한 결코 쉽지 않다. 어떻게 운 좋게 만났다고 하더라도 약이 부작용이 있듯 상담의 부작용도 경험하기도 한다. 즉, 해결하러 갔다가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찾질 못했다. 나와 아이의 내면이 병들었지만 막막하기만 했다. 특히나 아이는 딱히 약도 상담도 별 도움이 되질 못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엄마인 내가 나와 내 아이에게 자질을 갖춘 상담사가 되어 해결해 가야 했다. 먼저는 내 업장을 인지하고 스스로 풀어내는 긴 과정을 거쳐야 했다. 무섭고 괴물 같기만 한 내 감정을 인지하고 내가 나를 허용하고 받아주는 시간과 마주하는 용기가 필요했고, 그리고 그것을 어렵지만 조금씩 무서웠던 대상에게 용기 내어 표현하는 법을 배워가야 했다. 나는 더 이상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지금 실재하는 모습으로 그 사건들을 다시 재해석하고 지금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내 안에 안전하고 인자한 내면의 눈이 있어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어떤 것도 책망하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 누군가의 눈-나를 진심으로 공감하고 온전히 포용해 주는 눈이 있어야 이 과정이 이루어진다. 어쩌면 자기 안이든 밖이든 안전하고 인자한 눈을 만나지 못한다면 어둡고 침침한 내면의 감옥에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