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by 아름다운 관찰자

작년에 작은딸과 단둘이서 갔던 제주도 여행은 내게 '모른다'는 것을 마음 편히 받아들이는 수행의 장이 되었다. 아무리 제주도 여행에 관한 책들을 도서관에서 잔뜩 빌려 딸이 가고 싶은 곳들을 고려하여 여행 스케줄을 짜고 계획을 했어도 막상 그곳은 내게 미지의 장소였다. 물론 같은 한국 땅이라는 것에 안심이 되긴 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한 이상 딸과 내가 계획했던 대로 일이 진행될지는 미지수였다. 물론 제주도 버스가 잘 되어 있고 버스시간표도 네이버앱이나 카카오앱을 통해 잘 알 수 있지만 여행이란 것 자체가 조용히 일상을 살고 싶은 나에겐 크게 부담이 되었다.


이처럼 모른다는 것은 내게 두려움을 준다. 그래서 마음은 항상 주어진 것을 모두 파악하여 나름대로 해석하고 결론을 내리려 하지만 그럴수록 여전히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더 알게 될 뿐이다. 일단 두려움 가운데 계획하고 있던 모든 애씀을 멈추고 나는 천천히 호흡하였다. 그리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잠잠히 받아들였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준비하고 이제 나머지는 맡기기로 하였다. 모든 것을 고려하여 여행 스케줄을 완벽하게 맞추려는 나의 기질과 욕심도 또한 내려놓았다. 사실 여행의 순간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완벽한 여행이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없고 모른다는 사실을 조금씩 수용하기 시작하면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을 넘어서게 된다. 마음도 편해져 이윽고 생각 저편에 있는 지혜의 장이 열리기 시작한다.


살짝 긴장한 마음으로 제주도에 도착해 숙소가 있는 서귀포시로 가기 위해 공항버스를 기다렸다. 한 이십 분을 기다려야 했는데 기다리는 동안 내 마음에 평온함이 내내 있었다. 왠지 우리를 위해 모든 것들이 예비되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딸은 순간순간을 감사하고 즐기면 될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도 잘 풀릴 것 같았다. 설혹 잘 안 풀린다 해도 그것 자체로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만 딸과 나는 제주도로 출발하기 전에 공항에서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여행하는 동안 짜증 내고 화내는 쪽이 벌금을 내기로 했다. 설혹 일이 잘 안 풀려도 안 좋은 말은 금하는 것이 여행을 하는 동안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규율은 여행하는 동안 헤매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었고 딸과의 사이를 끝까지 좋게 지켜주었다.)


서귀포시에 있는 숙소로 사용되는 건물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예상외로 매우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깨끗하고 편리했다. 하지만 숙소 근처에 사 먹을 만한 곳이 없는 외진 곳이어서 버스를 타러 가려면 한참을 걸어야 했고 종종 저녁을 간단히 비상용으로 준비해 간 라면으로 때워야 했지만 그것 자체로 재미가 있었다. 반대로 제주시에 있는 숙소는 중심가에 있어 근처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다 있고 제주지역 어느 곳이든 가는 버스가 있어 편리한 곳이었다. 반은 서귀포에 머물고 반은 제주시에 머물면서 일주일 안에 제주도 전체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는데 딸이 꼭 가보고 싶었던 디저트 맛집들은 놀랍게도 다 가볼 수 있었다. 비수기라 가게들의 줄이 길지 않았고 중간중간 이동할 때 버스들을 거의 기다리지 않고 탔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버스운이 좋을지는 몰랐다. 딸 덕분에 각양각색의 디저트의 황홀하고도 맛있는 세계를 경험하는 것도 새로웠고 자기 전 다음날 어디를 갈지 지도를 펼치고 고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완벽하고 좋은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걱정과 압박감이 사라진 그 자리에는 다음날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감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잘 몰라서 헤매고 실수하는 것조차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 우리에게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