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하천길을 걷다 보면 사계절을 따라 풀숲에서 피어나는 들꽃들이 형형색색 아름답기도 하지만 텃새처럼 살고 있는 오리 떼들이 물 위에 군데군데 모여 있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참 귀엽고 사랑스럽다. 오고 가며 자세히 관찰하면 깃털을 고르고 있거나 서로 장난을 치거나 혹은 목욕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대개는 유유히 떠다니거나 가만히 쉴 때가 많다. 그날도 수영장을 하천길을 따라 다녀오다가 비를 맞고 있는 오리 떼들을 보았다. 비가 올 줄 모르고 덜렁 수영장을 갔는데 마치고 나오니 가을비가 제법 오고 있었다. 카운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우산을 빌려 쓰고 집으로 오던 길이었다. 멀리서 오리 떼들을 여느 때처럼 보았는데 평상시와는 달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라, 오리들이 가만히 비를 맞고 있네?' 생각해 보니 비가 온다고 오리들이 피하거나 야단 법석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비가 세차게 올 때도, 추운 한겨울 눈이 올 때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과 뜨거운 한여름에도 그날그날의 날씨를 온몸으로 맞으며 유유히 물 위에 떠 있었다. 불평이라곤 전혀 없었다. 방패막이라곤 달랑 깃털이 전부이다. 그런데 그들의 유유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또 한 번은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커다랗고 몸 전체가 까만 개가 하천 한가운데로 들어와 첨벙첨벙 온몸으로 물을 튀기며 놀고 있었다. 순간 겁이 났다. '저 개가 목줄이 풀려 있는데 산책길 위로 올라와 활보하고 다니다 사람을 다치게 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런데 건너편에서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개를 향해 "얼른 나와!" 하고 계속 소리를 치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개는 위협적이지 않았고 어쩌다 주인의 손을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물에 뛰어들어 장난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개는 위협적일 거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개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리 떼들이 쉬고 있었다. 시커먼 개가 들어와서 야단법석을 부리고 있었는데도 조용히 대열을 유지하고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무척이나 신기했다. 내 눈에는 분명 위협적으로 보였는데 오리들은 상관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마침내 시커먼 개가 주인의 부름에 응답하여 물에서 나와 자기 몸에 목줄이 매여질 수 있도록 주인에게 자신을 맡겼다. 그리고 좀 있으니 그제야 오리 떼들이 깍깍 소리를 내며 날개를 털어내었다.
이렇듯 오리들이 보여 준 유유함과 날씨에 대한 순응, 그리고 태평스러움까지 나의 일상에서 한 번 적용해 보고 싶었다.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일상에서는 언제나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적용할 기회는 무척 많다. 아니, 무궁무진할 정도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얼마든지 피할 선택의 자유가 있다. 비 맞는 것이 싫으면 우산을 쓸 수도 있고 안 좋은 날씨를 피하고자 거처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가 애매하거나 어쩔 수 없이 부딪혀야 하거나 피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정했을 때 적용해 본다는 뜻이다. 나에게 얼마 안 있어 적용해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제주도 여행을 직접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해서 가야 하는 귀찮은 일이 벌어졌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작은 딸과 제주도 여행을, 그것도 7박 8일을 단둘이서만 얼떨결에 가게 된 것 자체가 나에겐 비가 몰아치는 상황이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의아한 말이겠지만 조용히 일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에 기쁨과 평화로움을 누리고 있는 나에겐 나랑 정반대의 성격인 딸과 하루 종일을 같이 하는 것 자체가 날마다 소낙비에 노출되는 것과 같았다. 중학생 특유의 말투들 '짜증 나'로부터 시작하여 '역겨워'로 끝나는 빠르고 시끄러운 말들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몸짓 자체가 나에겐 갑자기 큰 개가 물속에서 들어와 뛰어노는 것처럼 소란스럽고 정신산란해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난 딸이 가고 싶은 곳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 운전기사, 딸의 인스타에 올릴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뛰어난 사진기사, 시간 낭비 없이 스케줄을 짜서 이끌어 주는 비서 역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무척이나 버거웠다. 아빠가 함께 하지 못 해 다 엄마인 내 몫이 되어 버린 것이다. 제주대학교 교수로 계신 여동생의 형님의 도움으로 이미 숙박이 정해진 이상 물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난 오리들이 보여 준 '순응'을 잠잠히 묵상했다. 우선은 여행 자체에 대한 부담감과 작은 딸과의 동행이 가져다 줄 갈등과 소란스러움이 충분히 있을 수 있음을 먼저 인정했다. 그리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쏟아지는 가을비와 시커먼 개를 받아들이자... 받아들이자... 받아들이자... 가을 소낙비를 맞자... 시커먼 개가 뛰어놀게 놔두자... 그러자 처음에는 미미했으나 일주일 정도 지나 제주도 여행 가기 전날에는 긴장은 되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날 모든 상황을 그때그때의 지혜에 맡기기로 하는 유유함도 살짝 찾아왔다.
딸이 출국장에서 갑자기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 위하여 자기가 '짜증 나'하거나 엄마가 까다로워 '불평'을 하면 서로에게 만원씩 벌금을 내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진 찍어달라는 것도 자제하겠다고 했고 자동차 렌털 대신 버스와 택시를 이용하기로 동의해서 운전기사 역할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마치 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딸이 말했다. 그런데 제주도를 막상 갔더니 함께 하는 딸보다 어딜 가나 옆에 앉아 시끄럽게 떠드는 중국 사람들이 나에겐 또 그런 상황이 되었다. 여기가 한국땅인가? 중국땅인가? 할 정도로 중국 사람들이 길거리에서부터 버스, 숙소, 식당, 명소등 어딜 가나 많았다. 사실 어느 나라 사람이든 시끄러운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나 제주도에서 크게 떠드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중국인들이었다. 희한한 건 나와 딸이 앉은 식당 옆 테이블에는 반드시 중국 사람 넷이 와서 앉아 큰 소리로 잡담을 나누거나 통화를 했다. '또 중국 사람이야?' 하지만 오해는 없길 바란다. 나는 중국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시끄러운 목소리를 힘들어한다. 조용히 맛을 음미하는 것 자체가 방해받기 때문이다. (이건 순전히 나 중심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흥분해서 시끄럽게 떠들 때도 솔직히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딸이 편견이라고 했으나 힘든 건 힘든 거였다. 하루 이틀 이렇게 지나자 난 다시 오리들을 떠올렸다. 나의 여행을 망칠 수는 없었다. 시끄럽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시커먼 개가 노닐도록...! 그러자 여행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는 중국 사람들이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았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나를 보고 딸이 의아해했다. "엄마, 중국 사람이야!"라고 작은 목소리로 상기까지 시켜주었으나 나는 단지 어깨만 으쓱했다. 난 어느덧 중국 사람들이 떠드는 것에 개의치 않게 되었고 나와 딸과의 소중한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만히 보니 조용한 중국인들도 간간히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계속되는 불편한 경험으로 생긴 편견 어린 시선이 중국 사람은 시끄럽다고 일반화시킨 것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소란함에 대한 마음의 저항을 털어버리고 소란함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 때 그런 수용이 내면의 평화로운 허공으로,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든 있는 그대로 깊이 수용할 때마다 나는 고요해진다. 나는 평화로워지진다.
고요함의 지혜 p16
소란함에 대한 마음의 저항을 털어버리고 소란함을 있는 그대로 존재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 때 그런 수용이 내면의 평화로운 허공으로, 고요함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든 있는 그대로 깊이 수용할 때마다 나는 고요해진다. 나는 평화로워지진다.
고요함의 지혜 p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