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인가? 부먹인가?
나는 탕수육을 먹을 때는 소스를 따로 찍어먹는 '찍먹 스타일'을 좋아한다. 소스를 완전히 부어먹는 '부먹 스타일'도 나름 맛있지만 개인적으로 바삭한 튀김의 식감이 살아있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에 있어서는 완전히 부먹 스타일을 좋아한다. 한 번에 여러 곳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잠시 둘러보고 사진 몇 장 찍는 것으로는 그곳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을 짧게 해 최대한 여러 곳을 둘러보는 찍먹 스타일도 나름 의미가 있겠지만 여행지의 진정한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재작년 중학생인 작은딸과 호흡을 맞춰야 해서 제주도가 처음인 딸을 배려해 하루에 최대한 많이 갈 수 있는 동선을 짜서 찍먹 스타일로 일주일 동안 제주도를 동서남북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녔었다. 하지만 제주도를 떠나기 전날 하루만큼은 부먹 스타일로 그곳을 완전히 느끼고 싶었다. 나에게 있어 부먹으로 머무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숙소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 경쾌한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쓰기 전에 한동안 명상과 침묵기도를 한다. 내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모든 감각을 일깨워 주변의 사물 하나하나의 소리, 장면에 나를 맡기고 내 안에 있는 고요함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이곳에 완전히 '있는 자'가 된다.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적어가는 시간들이 가장 행복하다. 글을 쓰다가 잠깐씩 들려오는 소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제주시를 둘러싼 바다의 경관에 주의를 기울일 때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잔잔한 충족감을 준다. 제주 공항에 드나드는 비행기가 시원하게 활주로를 가로질러 들어오고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무척 재미있었다.
우리가 제주도 여행 마지막날 있었던 숙소는 제주시의 핫플레이스 노형동에 위치한 옥탑의 복층형 오피스텔이었다. 비용을 좀 더 주고서라도 바다가 보이는 뷰가 있는 호실을 선택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꿀자리였다. 뷰 맛집처럼 가까이에 바다가 보이고 비행기가 내리고 뜨는 모습이 한 번에 다 보이는 곳이었다. 예상치 못한 호사에 즐거워졌다. 멀리 희미하게 겨우 바다가 보일 줄 알았는데 빌딩들을 지나 바로 바다가 가까이에 있었고 체크인한 다음날부터는 날씨가 개여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며 글을 쓰는 즐거움을 선사해 준 숙소가 참 고마울 뿐이었다. 더구나 복층형이어서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딸아이와 독립된 공간에서 글을 쓸 수 있어 서로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좋았다.
여행 초반 서귀포시 남단 숲섬 근처에 숙소를 잡았을 때는 글을 쓸 시간이 전혀 없었다. 밤이나 새벽에 창문을 열어두면 들려오는 쏴~~ 쏴~~ 파도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싱그러운 숲의 냄새가 참 향기로운 곳이었지만 고요히 잠겨 있을 틈도 없이 눈떠서 짧게 커피를 마시고 나면 딸과 계획한 여행 스케줄을 따라 바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해야 해서 참 아쉬웠다. 그래서 그곳 숙소 마지막 날에는 잠을 아껴서라도 새벽에 숲섬이 보이는 해안가로 내려가 깊은 구름들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을 마음에 최대한 담았다. 그곳의 경치는 새벽녘 동틀 때 하늘에 오묘한 색깔들이 흩뿌려지고 발 밑은 깊은 파도가 큰 소리로 일렁이며 나를 삼키는 곳, 그래서 어느덧 내가 바다의 일부가 되는 그런 곳이었다. 동시에 해안가를 따라 길고 검게 늘어져 있는 돌들이 아름다운 행렬을 이루어 찬사를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한편에서는 낚시를 하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의 고요함도 전해져 오고 그곳에 있던 조용한 카페를 둘러싼 돌담들 사이사이를 오고 가는 고양이들을 감탄할 수 있는 곳이었다. 부먹의 맛은 이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