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세이 50
머리를 정갈하게 쪽을 지고 썬글라스를 쓴 할머니가 책을 읽으며 기다란 곰방대로 담배를 피우고 계신다. 쪽진머리와 검정 치마가 아니라면 어느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보인다. 무슨 책을 보고 계시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소설? 재미있는 유머집? 그런 류의 책을 읽기에는 할머니의 모습이 진지하다. 근엄한 할머니의 모습에 아침에 일어나 문안인사를 드리지 않으면 저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으로 가슴을 후벼팔듯한 아우라가 풍겨진다.
어쩌면 우리 할머니는 그림 속 할머니와는 다른 인자하시고 귀여운 할머니여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2년을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셨다. 치매가 오기 직전에는 밤에 자기 전에 항상 이야기를 해주셨다. 625때 피난 가던 이야기, 옛날옛적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시며 어두운 밤에 잠이 솔솔 오게 해주셨다. 같이 잠을 자던 할머니는 치매가 심해지시면서 거실 옆 방으로 옮기셨다. 대문과 가까운 내 방은 언제 할머니가 밖을 나갈지 모를 공간이 되었고 문과 가장 먼 방에 할머니는 침대만 있는 작은 방에 머무르셨다. 아침밥을 먹고 있다가 갑자기 전쟁났다며 이불을 둘둘 말아서 동굴로 가야 한다는 할머니. 한밤중에 내 방에 와서는 자신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아들을 찾던 할머니. 밥을 허겁지겁 먹다가도 밥을 안주고 굶긴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할머니. 할머니의 정신은 저 멀리 사라졌지만 그 수많은 세월동안 할머니에게 많은 추억이 쌓여 잊지 못할 기억들이 할머니와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들과 정정하고 허리 꼿꼿이 세우고 계신 할머니의 모습이 비교가 되면서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