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차] 내 인생에 수리 기사는 나뿐이었다

고생을 신성시하는 병

by 베리바니


나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이

성실함의 증거라고 믿으며 자랐다.

내 손으로 직접 고치고,

내 몸으로 직접 때우고,

끝내 내 시간을 깎아내는 것만이

돈을 대하는 정직한 태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보니 그것은 성실함이 아니라,

자신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는

뿌리 깊은 '결핍의 대물림'이었다.

나의 계산기에는

전문가의 숙련도나 나의 휴식 같은

무형의 가치는 적혀있지 않았다.



그저 '얼마를 아꼈는가'라는 숫자만
가혹하게 빛나고 있었을 뿐이다.



01. 베란다에서 시작된 '셀프'의 감옥


예전 빌라에 살던 시절, 우리 집 베란다는 아빠의 거대한 작업실이자 가족 모두의 강제 노역장이었다. 아빠는 베란다에 마루를 깔고, 시멘트를 이겨 벽을 세워 방을 만드는 그 고된 일을 모두 '손수' 해냈다. 전문가를 부르면 며칠이면 끝날 일을, 아빠는 자신의 몸을 갈아 넣으며 몇 주간 이어갔다.


문제는 그 고생이 아빠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족들이 거들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졌고, 서툰 솜씨로 돕다 보면 어김없이 짜증 섞인 타박이 날아왔다. 아빠에게 절약이란 단순히 돈을 아끼는 행위가 아니라, 온 가족이 불편함을 견디며 몸을 부딪쳐야 완성되는 일종의 '고난의 의식' 같았다.


02. 마트 봉투와 땀방울의 무게


아빠의 계산법은 집 밖에서도 쉬지 않았다. 엄마와 마트에서 잔뜩 장을 보고 나오는 길, 두 손에는 묵직한 비닐봉지가 들려 있지만 아빠는 단호하게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걷기 시작한다. 버스 두 정거장,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면 충분할 거리를 아빠는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다. "운동 삼아 걸으면 되지, 뭐 하러 돈을 쓰냐"는 아빠의 말에 엄마의 한숨이 섞인다. 그 순간 아빠가 아낀 것은 버스비 몇 천 원이었을지 모르나, 가족들이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의 휴식은 통째로 증발해 버렸다.


03. 냉기를 잃은 냉동고와 엄마의 한 달


우리 집 가전제품의 수명은 제조사가 아닌, 아빠의 '포기'에 달려 있었다. 15년 넘게 쓴 냉장고의 냉동 시스템이 멈췄던 그 여름을 기억한다. 꽁꽁 얼어 있어야 할 식재료들이 녹아내리고, 아이스크림은 액체가 되었다. 냉장고는 거대한 고철 덩어리가 되었지만, 아빠는 끝내 수리 기사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한번 뜯어보면 된다"는 아빠의 고집 아래, 냉동실은 한 달 넘게 텅 빈 채 방치되었다. 엄마는 매일 녹아버린 음식을 버리며 스트레스로 가슴을 쳤지만, 아빠의 계산기에서 '새 냉장고'나 '수리비'는 승인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아빠가 직접 고치겠다고 냉장고 뒷덜미를 잡고 씨름하는 동안, 가족들은 신선한 음식을 먹을 권리와 평온한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아빠는 돈을 아끼는 대신, 가족의 삶의 질과 엄마의 마음을 비용으로 지불하고 있었다.


04. 내 안에 이식된 '고생의 기본값'


성인이 된 나 또한 아빠와 닮아 있었다. 무언가 고장 나면 해결 방법부터 검색하고, 몸이 고된 것보다 돈이 나가는 것을 더 큰 실패로 여겼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신문물을 들일 때면 묘한 죄책감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쓸만한데', '나만 참으면 되는데'.


나의 잠재의식 속엔 "몸으로 때우는 것이 성실한 것이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은 나태한 것이다"라는 문장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늘 피로를 기본값으로 두었다. 편리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아빠의 고결한(?) 고생을 배신하는 사치처럼 느껴졌고, 나는 기꺼이 나를 괴롭히는 쪽을 선택하며 안도했다.


05. 낡은 방충망을 뜯어내며


아빠의 계산기는 결핍의 시대에는 생존의 도구였을 것이다. 하지만 풍요의 시대를 사는 나에게는 나를 가두는 창살이 되었다. 나는 이제 아빠가 주워온 낡은 가구들처럼, 내 마음속에 주워온 아빠의 낡은 가치관들을 하나씩 내다 버리려 한다.


나는 이제 방충망을 직접 고치지 않기로 했다. 냉동실이 녹아내리는데도 아빠의 고집을 기다리며 속앓이 하던 엄마처럼 나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내 시간과 에너지를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무능한 게 아니라 현명한 '교환'이기 때문이다.






[Self-Check] 내 안의 ‘아빠의 계산기’를 확인해 봅니다


아래 항목 중 내 무의식과 닮아 있는 문장이 있다면 체크해 보세요. (정답은 없으며, 그저 내 안에 심어진 오래된 습관을 발견해 보는 과정입니다.)


* [ ] 돈으로 해결하는 것을 ‘나태함’이라 느끼고, 몸으로 때우는 것을 ‘성실함’이라 믿어왔다.

* [ ]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비용보다, 내가 고생해서 아낀 숫자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 [ ] 물건이 제 기능을 잃어 불편을 주는데도 ‘고쳐 쓸 수 있다’는 희망으로 인내를 강요해 왔다.

* [ ] 편리한 서비스나 신문물을 누릴 때, 고생하며 사신 부모님에 대한 묘한 죄책감을 느낀다.

* [ ] 가족이나 타인의 편안함에는 기꺼이 지불하면서도, 내가 누릴 편안함에는 유독 가혹한 검열을 거친다.


기록의 한 줄 (Insight)

만약 하나라도 체크하셨다면, 당신은 지금 결핍의 시대에 만들어진 낡은 계산기를 여전히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그 계산기를 내려놓고, 당신의 시간과 평온에 새로운 가치를 매겨줄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