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장 속에서 10년의 시간을 우려내다
부엌 찬장을 정리하다가 깊숙한 곳에서 금박지에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쌓인 오래된 보이차 한 통을 발견했다.
언제 샀는지 정확한 날짜는 가물가물하지만, 결혼 후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중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마셨던 보이차가 의외로 마음에 남았던 날이 있었다. 입안에 남은 기름기를 씻어내주던 그 개운한 온기. 그 기억을 더듬어 인터넷 어디에선가 이 차를 주문했을 것이다.
당시 누군가는 중국산 보이차에 가짜가 많다며 주의를 주기도 했을 테지만, 그때의 나는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져 물을 만큼 차에 밝지 못했다. 그저 식후에 마신 차 한 잔이 좋았고, 내 주방에도 그만한 온기가 머물기를 바랐을 뿐이다.
그렇게 들인 차는 두어 번 마신 뒤 다시 찬장 속으로 들어갔다. 생활은 늘 바빴고, 차를 여유롭게 우려 마시는 일은 항상 '나중'의 몫으로 밀려났다.
이번에 차를 꺼내며 처음으로 겉면에 적힌 제조일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숫자 뒤에 숨어있던 10년이라는 시간이 문득 묵직하게 다가왔다. 보이차에는 정해진 유통기한이 없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보관 상태만 나쁘지 않다면, 오히려 오래될수록 그 맛이 둥글고 부드러워지는 귀한 차라는 사실도.
금박지를 조심스레 벗겨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긴 시간 응축되어 있던 찻잎의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물을 끓여 첫 물은 가볍게 깨워 버리고, 두 번째 물을 부었다. 찻잎이 풀어지며 투명한 물줄기가 이내 맑은 호박색으로 번져 나갔다.
색은 차분했고 맛은 거칠지 않았다. 혀끝에 닿는 감각이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보이차는 소화를 돕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날 내가 느낀 건 그런 기능적인 이점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오래된 것들을 '정리해야 할 목록'에 서둘러 올려두곤 한다. 쓸모가 다했거나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혹은 내 시야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이 버려져야만 하는 건 아니다. 어떤 것들은 그저, 가장 깊은 맛을 낼 수 있을 만큼 무르익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사람도, 물건도, 그리고 우리의 마음도.
나는 이제 이 보이차를 아주 가끔 마신다.
하루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싶을 때, 혹은 알 수 없는 조바심에 마음이 쫓길 때. 찻잔 속에서 속도가 서서히 내려가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이 차는 제 몫을 다하고도 남는다.
찬장 구석, 당신이 잊고 있던
'기다림'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