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라는 이름의 만성 질환

by 베리바니


생각은 언제부터 이토록 피로한 노동이 되었을까.


가만히 있어도 머릿속은 멈추지 않는다. 뱉지 못한 말, 고르지 않은 선택, 아직 당도하지 않은 미래까지. 생각은 쉼 없이 나를 현재로부터 납치해 간다. 몸은 멀쩡한데 정신만은 이미 수만 리를 달리고 돌아온 듯한 날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세상의 모든 풍파를 정면으로 맞은 것처럼 지쳐버리는 밤들.


나는 가끔 생각이 하나의 질병처럼 느껴진다.


열도 없고 외상도 없지만, 서서히 삶의 컨디션을 갉아먹는 병. 가만히 두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방치할수록 자가증식하며 깊게 퍼지는 고질병.


이 질병의 가장 잔인한 점은 '현실보다 앞서 고통을 발명한다'는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패를 미리 슬퍼하고, 도착하지 않은 불행을 앞당겨 대비한다. 시작조차 하지 않은 일을 이미 망쳐버린 사람처럼 스스로를 대접한다. 결국 우리는 쉬고 있으면서도 쉬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늘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부채감 속에 살아간다.


생각은 늘 교묘한 얼굴로 '옳은 척'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대로 괜찮겠어?"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데 너만 뒤처지는 거 아냐?"


하지만 깨달았다. 그 질문들의 목적은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자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뿐임을.


그래서 요즘 나는 생각을 고치거나 이겨내려 애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생각을 하나의 '증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지금 내가 좀 지쳤구나."

"마음에 열이 올라 생각이 과열된 상태구나."

"지금은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니라, 마음의 체온을 낮춰야 할 때구나."


생각이 잦아드는 순간은 삶의 조건이 완벽해질 때가 아니다. 비로소 내 삶에 '몸'이 돌아올 때다.


손에 쥔 컵의 따스 온기가 느껴질 때.

공기의 서늘함이 폐부 깊숙이 닿을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머리보다 먼저 감각될 때.


생각이라는 질병은 완치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악화시키지 않을 선택은 내 몫이다.


오늘은 생각을 고치려 들지 말자. 그저 나를 괴롭히는 그 생각들을 조금만 덜 믿어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 나는 충분히 회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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