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해도 괜찮아

이른 포기는 새로운 도전을 위한 빠른 기회일 수도 있다.

by 꿈꾸는루다


여기서 포기하면 대학 떨어진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갔을 때 2일 차 일정은 한라산 등반 '만' 있었다. 한라산의 웅장함? 한라산의 매력? 이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너무나 힘들었기에 포기를 떠올릴 때쯤 뒤따라오던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여기서 포기하면 대학 떨어진다


헉! 대학에 떨어진다니요.

고등학생을 움직이게 하는 치트키 ''대학''

여기서 포기하면 대학에 떨어진다는 그런 무시무시한 말은 나의 발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한라산 정상에서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록담을 덕이 없는 집안의 자식인지 안개 흐릿한 백록담'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봤을 때 여학생 반 통틀어 오로지 11명이 있었다. 포기하면 대학 떨어진다는 말을 계속 들어왔던 11명. 선생님은 11명을 기념하시며 사진을 찍어서 수학여행 후 나눠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들은 이제 다할 수 있다



알고 봤더니 나머지 여학생 및 남학생들 일부는 이미 초입에서 포기하고 한라산 정상을 올라갔던 친구들이 돌아오기를 따뜻한 차량에서 과자와 도시락을 먹으며 유유자적하게 있었다는 걸 알았다. 한라산 등반 후 나는 수학여행 마지막 밤을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없었다. 열이 40도를 찍어 계속 누워있어야 했다.

그렇게 나의 고등학교 수학여행 마지막 밤을 이불과 함께 보냈다.


한라산 정상을 밟았던 11명의 아이들 중 2명은 서울대를 갔고 나머지는 자신의 성적에 맞춰 원하던 원하지 않던 대학을 갔다. 그리고 한라산 초입부터 포기했던 아이들도 몇몇 뜻한 바 재수를 하는 아이들 외 모두 대학을 갔다. 물론 전문대, 4년제, 국립대, SKY , 인서울 등등 종류별로 다양하게 말이다.




포기=실패자, 포기 =패배자


"실패하는 자가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한 자가 패배하는 것이다" -장 파울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잘라야지"


"패배가 찾아왔을 때, 가장 논리적이고 쉽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포기다.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취하는 조치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으로 남는 이유다" -나폴레옹


포기에 대한 많은 속담과 격언들은 포기를 하면 마치 인생의 패배자이고 실패자인 것처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한동안 내 머릿속은 포기=패배자, 포기=실패자 이런 공식이 자리 잡게 되어 내가 하고 있는 일 또는 공부가 나에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른 체 계속 나아가게 하는 그런 마법의 약 같은 단어가 되어있었다.



이른 포기는 도전을 시작하기 위한 빠른 기회


나에게 첫 번째 포기는 경제학 박사를 꿈꾸며 대학원 수료를 하고 논문을 앞둔 때였다. 동기들은 진로를 정하여 취업을 하거나 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석사 논문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대학원은 학부와 다르고 나보다 잘하는 애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학부 때부터 경제학을 배웠지만 경제학을 연구하는 직업을 가질 만큼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동기들이 함께 해줘서 어찌어찌 수료는 하게 되었지만 논문을 앞두고 나의 능력치를 더 알게 되었고 박사를 올라갈 만한 동력을 찾지 못했다. 나는 논문을 포기했고 본가로 돌아왔다.


없는 집안에서 나름 박사가 나와서 어디 이름 없는 대학이라도 강의라도 해 먹으면서 살아갈 줄 알았던 또 그것을 간판 삼아 선이라도 보게 하려던 엄마의 야심 찬 계획도 깨졌다.


그리고 나는 부업으로 하던 과외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 ''중고등 공부방''을 열었지만 벌어놨던 돈을 까먹으며 근근이 버티다가 1년이 지나고서야 1명이 4명이 되고 4명이 8명이 되고 8명이 16명 그리고 25명을 가르치게 되면서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지냈다.


한동안 마음 한편에 무엇인가를 포기했다는 것이 뒤를 닦고 나오지 않은 찝찝함을 느끼게 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더 일찍 포기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끌면서 나는 더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꼭 이 길 만이 길이여서 지금 내가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를 자책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나도 그날 한라산 초입에서 포기하고 돌아왔다면 지금은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백록담보다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마지막 캠프파이어를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까


누군가 힘들고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이것도 못 견뎌서 다음에 뭐라도 하겠어?"라는 부정적인 말보다는 ''여기까지도 잘했어" , "어떤 일이든 이유 없는 일은 없어"라는 말이 어쩌면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나에게 냉정해질 수도 아니면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도 있다. 이른 포기는 때론 새로운 도전을 시작 하기 위한 빠른 기회를 얻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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