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1)

국가지정 공식 암환자

by 꿈꾸는루다

20대에는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학생을 가르쳤다.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녔다.


30대에 결혼해서 첫째 둘째를 낳았고

첫째 낳고 대신할 선생님이 없어서 퇴원과 동시에 5일 만에 수업을 했고

둘째 낳고도 대신할 선생님이 없어서 3일 만에 수업을 했다.

주말부부를 하며 애 둘을 데리고 육아도 병행했다.


40대에는 낮에는 학교수업 저녁에는 과외수업을 했다

그리고 24년부터는 드디어 수학이 아닌 나의 전공 관련 수업을 시작하는 덕분에 쓰리잡이 되었다.

그리고 좀 더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계획들을 세워두었다.

드디어 내 전공을 살려서 일할 수 있어서 설레고 기뻤다.

더 많은 강의를 하고 싶었다.


당분간은 둘째 치료 본격적으로 해야 되어서 학교 일과 과외를 접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작년 4월부터는 오전 시간 운동은 시간을 버리는 느낌이어서 새벽 5시 30분에 운동을 하였고

5Km를 30분에 뛰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거의 근접해 왔다

그러던 찰나에 12월 끝자락에 '암세포'란 놈을 만났다.


''암세포는 맞으니 큰 병원으로 가세요''


암이라는 말을 듣고도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덤덤한 환자는 처음 봤다고 했다.

아마도 이럴 때 T가 유리한 것 같다

머릿속에는 그동안 벌려놓은 일과 우선순위로 해결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일을 쉰다고 했다

주말부부인 남편은 회사에서 계속 눈물바람을 해서 업무 배제를 당(?)했다.

당사자인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너무 걱정을 하고 울어서 정작 나는 내가 강제로 슬퍼야 하는 건가 했다.


서울까지 가는 건 아이들도 있고 육체적으로 힘들 것 같아서 집 근처 대학병원을 결정했고

담당교수님을 만났다.

그는 친절했고 씩씩한 환자라고 칭찬했다.

국가지정 공식 암환자로 등록되면서 건강보험료의 위대함을 느꼈다.

전에도 그랬지만 건강보험료로 내는 돈은 아깝지가 않다.


학교에 상황을 알렸고 학교는 미련 없이 12월 계약종료를 해주었다.

과외 학생들은 다른 학원 다른 과외로 보냈다.

강의 관련 프로젝트가 있어서 입원하는 날까지 회의를 하고 입원했다.

수술 전날까지 프로젝트 계획을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수정했다.

그리고 9일 날 수술하고 난 뒤 지금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빨래도 청소도 일도 아이들 돌봄도 내 공부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의 주는 밥 먹고 그냥 걷고

그런데 이런 일상을 살아본 적이 없어서 낯설다. 익숙하지 않다.

몇 번의 수술을 했고 입원을 했지만 그때는 항상 퇴원하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초조하고 불안하다. 일을 아예 하지 못할까 봐


친구들은 쉰 적이 없으니 쉬어가라고 그런가 보다는 말하지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암을 만난 것보다 더 크다


27년을 쉰 적이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쉬라고

집 값도 갚아야 하고

애들 학원도 보내야 하고

이제 뭔가 전공 살려서 시작하려는 나에게

굳이 쉬라고

정말 쉬고 싶지 않은데 아니 쉬면 안 되는데

굳이 원하지도 않는데 찾아온 건지

일상도 망가져 계획도 망가져 모든 게 망쳐졌는데

그런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쉬라는 건지

앞으로 치료 계획으로 불안한 게 아니라

루틴대로 살아왔던 나를 망치러 온 이 녀석 때문에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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