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왜 걸었을까
이 글은 브런치 연재북 「답은 없지만, 길은 있으니까」의 1장 ‘힘들 때마다 나는 걷는다’ 중
「그날 왜 걸었을까」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마음이 무너질 것 같았던 날,
나는 생각을 멈추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침묵 속에서 마음은 더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그날은 가만히 숨만 쉬어도 영혼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은 날이었다. 무엇을 해도 마음은 까만 심연 속으로 추락해 있었고, 세상은 냉정하게 돌아가는데 나만 시간 속에 갇혀 숨죽이고 있었다.
누군가의 그림자조차 마주하는 것이 공포스러운 날이었다. "잘 지냈어요?"라는 무심한 인사가 건네지기라도 하면, 내 목구멍에선 비명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상처 입은 마음을 세상에 드러낼 용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왜 그토록 갈망하던 보통의 삶 하나,
손끝에서 모래처럼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분명 내가 선택한 길인데, 그날따라 그 선택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책은 공허한 문자의 나열일 뿐이었고,
TV는 소음, 음악은 불협화음이었다.
그 어떤 것도 황폐해진 내 마음에 닿지 못했다.
감정의 회로가 끊어진 듯, 웃음도 눈물도 사라졌다.
그저 무한한 공허함만이 내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겠다는 의지만이 오히려 가장 선명했다.
꿈쩍도 않고 있으면서도,
그 무기력함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것이 그날의 나에겐
유일하게 허락된 저항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완벽한 정적 속에 잠겨 있을수록
내 안의 소리는 점점 더 귀청을 찢을 듯 커져갔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내면의 폭풍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숨을 쉬지 않으면, 이 고요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살기 위해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살아남기 위해 광기처럼 밖으로 내달렸다.
때로는 그런 움직임만이
내면의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였다.
그렇게 시작된 절망의 걸음.
그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