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놀라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내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방에 들여놓는 것이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는 것이다.
『아티스트 웨이』 p.306
'아티스트'라는 말은 발음만으로도 아름답다. 입안에서 천천히 굴릴 때마다 단어 자체가 가진 고귀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 감각이 내 안에도 있었으면 했다. 어딘가 쉽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그건 또 누구에게나 있는 감각도 아니다. 그래서 더 갖고 싶었다.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고, 다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을 가지고서 말이다.
나는 유행가보다 조용한 음악을 찾아 듣는다. 감정을 담아내거나 일상의 위로를 전하는 가사가 좋다. 리듬감은 있되 시끄럽지 않은 멜로디로 차트 상위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안에 진심이 느껴지면 된다.
곽진언의 '일종의 고백'을 처음 들었을 때가 그랬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 OST로 흘러나온 그 곡에 귀가 꽂혀서 한동안 그 노래만 반복해 들었다. 노래가 좋으면 좋았지 굳이 다른 설명을 찾아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최근 '싱어게인'에서 55호 가수가 그 곡을 부르는 걸 봤다. 원곡자가 55호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우연히 정보를 알게 되는 이 순간이 더 재밌었다. 내 감각은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다. 숨어 있던 인재를 내가 먼저 발견한 기분이 든다.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 없으니
나를 좀 안아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날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 갈 테니
일종의 고백/ 이영훈/ 곽진언
언젠가 나도 이런 가사로 누군가에게 가닿고 싶다. 화려하지 않아도, 큰 울림이 아니어도, 누군가의 하루 끝자락에 작은 위안이 되는 말 한마디를 건네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음악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그 안에 있으니까.
이상하게도 나는 늘 조용한 존재들에게 눈길이 간다. 드라마의 주인공보다 조연에게. 아이돌 그룹의 리더나 활달한 멤버보다 묵묵히 예술적 끼를 발휘하는 사람에게. 지금보다 훨씬 덜 유명했을 때의 박정민 배우가 자꾸 끌렸던 것도 그래서다. 스포트라이트 밖에 서 있지만 자기 색깔을 잃지 않는 이들. 그 사람의 진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들. 세상이 주목하지 않아도 자기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들에 이끌린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어쩌면 나는 그들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걸지도 모른다. 혹은 세상이 쉽게 지나치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내게 있는 걸지도. 화려함 뒤에 가려진 깊이를, 소란스러움 사이의 고요를, 빠름 속의 느림을 알아차리는 감각 같은 것 말이다.
예술가로 산다는 건 결국 자기 감각을 믿는 일이다. 남들이 "에이, 그게 뭐야?"라고 물어도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용기다. 비주류를 일부러 찾는 건 아니다. 다만 내 마음이 반응하는 것이 우연히 그쪽에 있을 뿐이다. 인기 없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 진심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다수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도록 배워왔다. 차트 1위 곡을 듣고, 유명한 배우를 좋아하고, 모두가 알아주는 것에 열광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잊어버린다.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완성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미완의 자신을 끌어안는 일에 가깝다. 어제보다 나아지려 애쓰되 다른 누군가가 되려 애쓰지 않는 것이다. 내 안의 이상한 취향들,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들, 타인의 눈에는 이해되지 않는 선택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내 감각을 믿는 연습을 한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고 조용히 빛나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색하고, 흔들리기도 하지만 내 안의 빛깔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게 어쩌면 나라는 이름의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악기를 다루지 않아도, 무대에 서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자기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간다. 매일 무엇을 듣고, 누구를 보고, 어떤 것에 마음을 쓸지 정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창작을 하고 있는 거다.
가끔은 외롭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고, 내가 주목하는 사람을 남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제야 좋아진 것들이 누군가는 이미 오래전부터 좋아한 것이었을 수 있다. 나 혼자만 특별한 느낌일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진짜 예술은 많은 사람에게 닿는 게 아니라 한 사람에게 깊이 닿는 것이니까. 적어도 내게 깊이 여운을 남기는 것들이니까.
이런 소소한 것들이 '아티스트'라는 고귀한 어휘에 가닿을 수 있을까. 내가 상상하는 아티스트의 이미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는 아티스트의 전체적인 모습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거창한 작품도 없고, 무대에 서본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깊은 영감을 준 경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늘 그것을 꿈꾼다. '아티스트'라는 말을 입안에서 다시 한번 굴려본다. 여전히 그 단어는 조금 먼 곳에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완전히 닿을 수 없는 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어쩌면 그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 자체가 이미 아티스트로 살아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가닿는 가사를 쓸 수 있을까. 화려하지 않아도, 유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하루 끝에 작은 위로가 되는 한 줄을.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내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노래 하나를 더한다. 완벽한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그걸 꿈꾸는 사람으로.
그리고 미소 짓는다.
이게 나다,라고 말하면서.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