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려들지 않을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직접 설계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의 계획에 끼어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을 위해 준비한 계획이 무엇인지 아는가? 별로 없다."
- 짐 론
며칠 전, 정자체 연습방에서 이 문장을 필사했다. 펜 끝으로 한 자 한 자 따라 쓰며 문장의 무게를 느끼고 싶었는데, 이상했다. 분명 좋은 말인데 입에 잘 붙지 않았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었다.
특히 이 부분.
"직접 설계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사람의 계획에 끼어들게 된다."
'끼어든다'는 말이 찔리고 거슬렸다. 끼어든다는 건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는 뜻 아닌가. 내가 선택해서 들어간 것처럼 들린다. 내 의지가 개입된 것처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의지로 들어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들어가 버린 것일 텐데... 그 표현은 너무 주체적이었다.
계획없이는 '끼어드는' 게 아니라 '말려드는' 거다. 말려든다는 건 수동적이 되는 일이다. 흐름에 휩쓸리는 일이다. 물살에 발이 닿지 않은 채 떠내려가듯, 내 의지가 아니다. 마치 선택의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들리지만, 직접 설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애초에 그 선택의 기회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대부분 그렇다. 누군가의 계획 속으로 능동적으로 끼어드는 게 아니라 조금씩, 무의식적으로 말려들어간다. 어느 순간 보면 원하지 않았던 자리에 서 있다. 바라지 않았던 일을 하고 있다. 회사의 프로젝트에, 누군가의 기대에, 익숙한 루틴에.
남의 리듬에 맞춰 걷다 보면 어느새 중심을 잃는다. 두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내 발로 걷고 있다는 감각은 사라진다. 그래서 아주 작게라도 내 하루의 방향을 그려보는 게 필요하다. 늘 계획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완벽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매일 내 설계도에 점 하나라도 찍어낼 의지는 있어야 한다.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걷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거창한 설계도가 아니어도 괜찮다. 단지 내 마음이 향하는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한 지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을까. 점심시간에는 어디를 걸을까. 저녁에는 어떤 책을 펼쳐볼까. 이런 작은 질문들이 쌓여 하루의 방향이 된다. 그 하루가 모여 일주일의 궤적이 되고, 한 달의 풍경이 되고, 결국 한 해의 이야기가 된다.
누군가는 그렇게 살면 비효율적이지 않냐고 묻기 바쁠 수 있다. 큰 목표 없이 그냥 하루하루 사는 거 아니냐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지 않은 설계도는 아무리 정교해도 내 삶이 아니라는 것쯤은 안다. 남의 계획 속에서 효율적으로 쓰이는 것보다 내 방향 속에서 느리게 걷는 게 더 의미 있다.
오늘도 메모장에, 마음속에 작은 방향을 그려본다.
끄적끄적, 그다음이 무엇일지 한 줄 더 그어본다.
그렇게 모인 선들이 내 삶의 설계가 되기를 바라본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