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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끝자락에서

by 꿈꾸는 나비



가을빛이 완연한 연휴의 끝자락에서


길었던 추석 연휴도 이제 저물어간다. 아직 주말까지 며칠은 남아있지만, 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이면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다.


휴일 기간 동안 평소의 루틴을 잠시 내려두었다. 일찍 눈을 뜨지 않아도 괜찮고, 해야 할 일을 미뤄도 괜찮았다. 알람 소리 없이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느긋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것. 그저 함께 웃고, 함께 밥을 먹고, 별일 아닌 이야기들을 나누는 일상으로 하루를 채우기로 했다.


딩굴딩굴 우리 꼬물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에, 최대한 곁에 머물렀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보는 것도, 함께 요리를 하며 투닥거리는 것도 모두가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온전히 함께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머릿속은 이사 갈 집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계약 조건은 어떻게 할지, 짐은 언제부터 정리해야 할지, 새 집의 구조는 어떻게 꾸며야 할지.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이 현재의 나를 자꾸만 미래로 끌어당겼다.


휴일이라 발이 묶이자 마음도 덩달아 흔들렸다. 마음껏 쉬자고 다짐했으면서도, 잡고 있던 일상의 끈 하나를 놓자 후드득 모든 것이 흩어지는 기분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주던 안정감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불안이 채웠다.


조건을 맞추려 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조급함 속에서 불안이 자꾸 고개를 든다. ‘이렇게 쉬어도 괜찮은 걸까?’ ‘뒤처지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들이 마음 한편을 계속 두드렸다.


그때, 우연처럼 한 문장이 나를 찾아왔다.


작은 약속을 매일 지키다 보면
인생도 나를 밀어주기 시작한다.
— 안성재

그래, 나는 그동안 매일의 작은 약속으로 나를 버텨왔던 사람이었다. 아침의 커피 한 잔, 저녁의 산책 한 바퀴, 하루 끝에 글을 쓰겠다는 다짐 하나까지. 거창하지 않은 그 조용한 반복들이 나를 단단하게 세워주었다. 흔들릴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기준점이 되어주었고, 작은 성취감들이 쌓여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하지만 오늘까지만은 일상의 약속은 잠시 쉬어가려한다. 쉼 또한 나만의 작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딸의 웃음 속에서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서로의 온기 속에 하루를 덮는다.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 이미 의미 있는 하루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 지금 이 순간, 인생이 나를 살짝 밀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멈춤 속에서도 흐르는 시간, 쉼 속에서도 채워지는 마음. 그것 역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나의 작은 약속들이 시작될 테니까. 그리고 그 약속들은 오늘의 쉼 덕분에 더 단단해질 것이다. 딸과의 마지막 하루를 온전히 누리면 내일의 나는 조금 더 충만한 마음으로 다시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즐거운 연휴되세요!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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