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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과 이면 사이에서

by 꿈꾸는 나비

누군가의 삶이 부러워 보였다면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당신에겐 타인의 삶의 이면까지

들여다볼 능력이 없다는 것.


<시소 인생> 강주원


요즘 이사할 집을 알아보면서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방 몇 칸, 평수 몇 평, 예산에 짜 맞추다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 삶이 떠오른다. 마흔을 넘어서니 친구들 사이에서도 경제적인 차이가 확실히 드러난다. 더 이상 모호하게 감춰지지 않는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지난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지금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우선했고, 어디에 시간을 쏟았는지가 모두 현재라는 결과지 위에 선명하게 적혀 있다.


나는 솔직히 넉넉하지 않다.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딸을 위해 들어가는 돈은 점점 늘어나고, 부모님께 받은 도움을 조금씩 갚아가려니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이 이어진다. 씀씀이는 줄지 않는데 벌이는 늘 한정적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을 두고 계획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계획이 없는 게 아니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뿐이다. 진짜 불릴 구석이 없다는 말이 딱 맞다. 저축 계좌를 들여다볼 때마다 한숨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인지 친구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은 맞벌이를 하고 그러니 여행도 다니고 취미도 즐기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늘 여유로워 보인다. SNS에는 제주도 바다 앞 브런치 사진이 올라오고, 주말에는 골프 치러 간 인증샷이 뜨고, 새로 산 명품 가방이나 최신형 가전제품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평범하고 안정적인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솔직히 부럽다. 때로는 질투도 난다. 왜 나만 이렇게 빠듯하게 사는 것 같은지 내가 뭘 잘못한 건지 자책하게 되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게 정말 전부일까 생각해 본다. 겉으로 드러난 앞면만 보고 있을 뿐 그 이면까지 내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맞벌이의 풍족함 뒤에는 늘 시간이 부족한 갈증이 따라붙을지도 모른다. 아이와 함께할 시간, 혼자만의 시간, 부부가 마주 앉을 시간조차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일상일 수도 있다. 여행 사진 한 장 뒤에는 빚이나 할부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보기 좋은 그 한 장면을 위해 몇 달을 쪼개어 갚아야 하는 대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풍요로워 보이는 취미 생활도 사실은 버티기 위해 애써 마련한 탈출구일지 모른다. 일상이 너무 고되니까, 그것 없이는 견딜 수 없으니까 붙잡는 끈일 수도 있다.



삶은 언제나 앞면과 이면을 함께 갖고 있다. 동전의 앞면을 보는 순간 뒷면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모든 것에는 보이는 면과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내가 사는 이 팍팍한 삶도 누군가의 눈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 딸과 함께 보내는 주말의 시간, 급하지 않게 산책하는 저녁, 혼자서도 어떻게든 버티며 여기까지 온 그 단단한 힘,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부러운 삶일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 삶을 보며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참 자유롭게 사는구나, 속박 없이 자기 속도대로.


그렇게 생각하면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늘 반쪽짜리다. 앞면만 보고 비교하는 일이니까. 내가 알 수 없는 이면까지는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다. 진짜 삶의 무게는 본인만 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공과 풍요 뒤에 어떤 희생이 있었는지, 어떤 외로움이 숨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비교에 휘둘릴수록 내 삶은 왜곡된다. 남의 하이라이트와 내 일상을 비교하는 것만큼 불공평한 게임도 없다.


결국 중요한 건 이거다.

삶은 늘 앞과 뒤를 함께 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누군가의 삶이 완벽해 보일 때 나는 그 이면을 상상해 본다. 반대로 내 삶이 초라해 보일 때, 이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로 비칠 수 있다는 걸 떠올린다. 그 마음 하나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붙잡아준다. 비교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게 한다.


집을 구하는 일은 여전히 막막하고 통장 잔고는 여전히 불안하다. 그래도 나는 내 삶의 이면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지키며 사는 일이 누군가와 비교하며 사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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