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가기로 마음먹고도 한참의 시간이 흘러 살던 집이 팔리던 때부터인 것 같다. 그 순간부터 내 운이 조금씩 풀리는 게 아닌가 조심스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해결이 죽어도 안 될 것 같던 일들이 요즘엔 스르르 풀린다. 모든 게 억지스럽지 않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흐른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 하면서 놀랍고도 기쁘게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이전엔 왜 나한테만 시련을 주냐며 믿지도 않는 신을 불러다 하소연하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어머나, 감사합니다"를 계속 되뇌게 된다. 조금 투머치해도 괜찮다. 정말 고맙다는 마음뿐이다. 일이 막힘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사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내가 감사해하는 것들을 돌아보면 소박하다. 어쩌면 너무 일상적인 일들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며 요구르트며 사다주시는 고객님들. 우연찮게 스몰토크를 주고받다가 그게 계기가 되어 실적으로 이어지는 일. 친구가 "요즘 너랑 잘 맞고 제일 편하게 본다"라고 말해주는 일. 우리 딸이 나를 보고 싶어 늘 전화해 주는 일. 아빠 수술날을 잡아두고도 회사 일정이 안 맞아 못 쉬어서 내내 맘이 부대껴왔는데 일정이 나도 모르게 조정되어 병원 일정에 맞춰 쉴 수 있게 된 일. 이번 주 고등학교 친구들 계모임이 서울에서 있는데 어제 철도 파업 소식이 들렸다가 오늘 다시 파업 보류가 되었다는 소식처럼 안 되려나 했는데 금세 걱정 말라며 일이 해결되는 느낌. 이런 것들이다. 정말 소소하고 남들에겐 별일 아닐 일들이 이렇게 감격스럽고 고마운 걸 보면 그동안 참 많이 힘들었나 보다. 지금의 마음과 현실이 오히려 그 시절을 반증해 주는 것 같다.
그래, 너 열심히 살았잖아.
이제 보상받을 때도 되었지.
누군가 조용히 그렇게 위로해 주는 것만 같다.
이 기운들을 깝죽거리지 않게 조용히 즐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늘 글에서 새해 계획이나 목표를 적을 때 떠올리는 오마이겐이치의 '변화할 세 가지'를 생각해 보면 나는 지금 시간을 달리 쓰고 있고, 환경을 서서히 바꾸고 있으며, 주변의 사람들도 재정비되는 중이다. 가만히 있으면 바뀌지 않는 것들을 계속 화두에 올려두고, 꺼내보고, 대입해 보고, 조금씩 실천하려 한 덕분이다. 진리 중의 진리인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 그리고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주문을 매일 마음속에서 되새긴 덕분이다.
요즘 가장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 같은 동네로 이사 왔다. 지속적으로 환영식을 해주겠다며 스케줄을 조정해 주는 모습이 고맙다. 서로의 일상이 바빠 약속이 몇 번 틀어져도 오히려 자기 시간에 맞춰 주어서 더 좋다고 말해주는 친구가 있어서 행복하다. 가깝게 직장을 다닐 수 있게 되어 저녁 시간 한 시간을 더 선물 받은 것도 감사한 일이다. 지금 나는 잠시 시간을 달리 쓰는 과정에서 삐걱대고 있지만 읽고 쓰는 삶을 하루 잠깐이라도 붙잡고 있다는 것만으로 내 삶을 둥글둥글하게 잘 매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나지 않게 나를 빚으려 할수록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게 보인다. 그게 제법 만족스럽다.
행복은 정말 특별한 게 아니라는 말이 요즘 따라 실감된다.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을 조금 낮추거나 유연하게 조정해 보니 생각보다 별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내 삶의 모양이 달라진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이제는 조금 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닐까.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