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태기 언저리, 달콤한 일탈을 꿈꾸다

루틴의 끈을 잠시 놓아줄 용기에 대하여

by 꿈꾸는 나비

아, 글태기(글+권태기) 언저리에서 살짝 발을 빼야 할 것 같다. "안돼, 오지 마! 글태기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단 말이야!" 마음속에서 경고음이 울리는 걸 애써 무시하며, 굳이 따지자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줄었다기보다는... 음, 솔직히 말해서 '일상'이라는 푹신한 소파가 너무 그리워졌다고 해야 맞겠지.


찬 바람이 불어오면 절로 생각나는 달콤한 군고구마나 따끈한 붕어빵처럼. 이맘때가 아니면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들을 그냥 그 순간에 실컷 누리고 싶은 욕구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렇게 신나게 즐기고, 그걸 또 글쓰기로 풀어내면 되지 않느냐'라고 누가 충고할 수도 있겠지만, 휴.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레 이어지는 글쓰기의 신공은 아직 내 능력 밖인가 보다. 일상을 즐기면서도 '이걸 또 글로 써야지!' 하는 강박이 슬쩍 끼어드는 순간, 즐거움의 흐름이 뚝, 뚝, 뚝 끊겨버리는 기분이니까.


특히 포근한 이불속에서 '아싸, 늦잠이다!' 하고 늘어지려 치면 등 뒤에서 아니 머리 위에서 오만가지 잔소리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야! 느슨해지지 마. 일어나! 너, 너와의 약속이 있잖아. 이 시간이면 독서! 필사! 오늘 모임책 분량 놓치면 내일 더 힘들어지잖아!" 결국 몸은 일으키지만 정신은 영락없이 멍하다. 1년 넘게 루틴으로 잡았던 새벽 기상이 몸에는 배었다고 자부했는데 글쎄, 정신머리가 좀 해이해졌달까?

(어쩌면 뇌가 겨울잠을 준비하는지도 모르지.)

자꾸만 그립다, 그 시절의 나태함이!

소파에 널브러져 자근자근 과자를 씹으면 TV는 눈과 귀로 흐르고 한 손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굴리고... 창밖 풍경 잠시 감상했다가 다시 TV에 눈을 줬다가 이내 다시 폰으로 시선이 쏠려 '다른 사람들 사는 모습'이라는 블랙홀에 잠시 빨려 들어간다. 시즌에 맞는 쇼핑템이나 당장 먹을 먹거리를 주문하다 보면 어느새 밖은 캄캄해지고! 하루의 피로가 급속도로 몰려와 소파에서 '개꿀잠'을 자던 그때로 자꾸 몸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지는 않을 걸 알면서도 왜 자꾸 "왜 그러면 안 돼?" 하고 반기를 드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막연하게 '글로 뭐라도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지!' 했던 희망 같은 마음이 점점 쪼그라들기 때문일 거다. 블로그든 브런치든 순간의 생각을 짧게 포착해 쓰는 일은 재미있고 꾸준히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내 삶의 수입원이나 창의적인 일로 연결될 수 있을까?' 하고 묻는 순간 늘 '딱 거기까지'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다. 벽 뒤에 뭐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은 딱 "여기까진가 보오." 하는 생각이 강하니 몸이 이리 멈추려 드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이렇게 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집니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딱히 뭐라 답할 말이 없다는 게 문제다. 읽고 쓰는 삶이 재미있고 할 만하지만 그때그때 즐길 만한 것들마저 '꺾어가며' 나를 루틴의 굴레에 가두면 나중에 뒤돌아봤을 때 내 인생에 뭐가 남을까?

책의 한 구절, 내 글에 담긴 그날의 감정 정도...?

그게 뭐다? 그게 다다!


이런 생각이 드니 이 삶을 이어나갈 '동력(動力)'이 너무나 약해진다. 이사 후 아직까지 이어지는 정리로 주변이 어수선(주문한 가구가 저번주부터 하나씩 도착하는데, 쓸고 닦고 조립하고 냄새 빼고 다시 수납까지 해야 끝일테지?!!) 하니, 글쓰기처럼 섬세한 작업은 영 집중이 안 되는 것도 사실이고. 글쓰기는 주변도 정신도 평온하고 조용할 때 집중이 되는 법인가 보다.


이제 연말연초 새로운 계획 짜느라 쫄깃하게 줄을 잡아야 할 법이지만 올 한 해 열심히 살았던 나에게 이번만큼은 '느슨함'이라는 상을 주고 싶다. 늘였다 줄였다,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게 사람이지 않나. 한 방향으로만 흘러서는 꾸준히 갈 수 없다는 핑계 아닌 나만의 진리를 펼쳐보자면, 인간은 자주 나태하고 늘어지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있다. 억지로 한 방향으로 꾸준히 모양을 이어나가면 결국 어딘가 늘어져 떨어지거나 너무 단단히 조여져서 끊어지기도 할 테니.


지금은 루틴을 '자유자재로 잘 조으고 풀어가는 것'이 최선인 시점인 것 같다. 내일의 글을 위해 오늘은 잠시 뜨거운 붕어빵을 향해 달려가도 괜찮지 않을까?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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