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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한 '출력' 대신 단단한 '입력'이 필요할 때

박정민의 '노력론' 앞에서 한 해를 정리하며

by 꿈꾸는 나비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이르렀다. 책상 위 달력의 남은 페이지를 쓸쓸히 바라보며 문득 배우 박정민이 했던 진솔한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재능이 많지 않고, 2:8의 비율로 노력 덕이 컸다"고 말했다. 그 담백하고 묵직한 노력론 앞에서 올해의 나를 깊이 되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그가 말한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찬찬히 돌아보았다.


올 한 해, 나는 종이책 발간이라는 거대한 과제를 안고 스스로를 혹독한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준비가 한참 부족한 채,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 속에 뛰어든 기분이었다. 사방이 캄캄한데도 "어떻게든 살아서 밖으로 올라와야 한다"는 절박함 하나로 글을 토해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빈 화면과 마주했고, 고요한 새벽내내 키보드를 두드렸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던 것 같다. 그것은 진정한 노력이라기보다는 처절한 발버둥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마감이라는 이름의 채찍질,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그 모든 것이 나를 앞으로 떠밀었지만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억지로 끌어올린 쓰기의 결과물을 냉정하게 마주했을 때 내면의 '바닥'이 투명하게 비춰지는 듯했다. 더 깊이 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통찰을 담아내기에는 그동안 내가 채워 넣은 '입력(Input)'의 경험치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원고를 읽고 또 읽으며 느낀 것은 공허함이었다. 문장은 있는데 깊이가 없었고, 이야기는 있는데 울림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땅에다 자꾸 파면 물이 나오냐." 내 상황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나는 남들이 겨울을 견디며 천천히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지혜가 담긴 수많은 책들을 소홀히했다. 그저 내 안의 텅 빈 공간에서 어떻게든 좋은 것을 끄집어내려 애썼던 것이다. 충분히 보지도, 듣지도, 배우지도 않았으면서 오직 부족한 재능이 기적처럼 살아나기를 바라며 나 자신을 무식하게 채찍질했다.

배우 박정민은 또 이렇게 말했다. "노력의 방향을 정해 줄 사람을 만나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고. 돌이켜보니 나는 방향없이 힘만 낭비하고 있었다. 목적지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사람처럼. 땀은 흘렸지만 제대로 된 길을 걷지 못했고, 노력은 했지만 올바른 방향을 향하지 못했다.


나에게 시급한 것은 무모한 '출력(Output)'이 아니라, 단단한 '입력(Input)'임을 마음 깊이 깨닫는 중이다. 글쓰기는 결국 내가 품고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인데, 정작 안에 든 것이 없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텅 빈 메아리만 울릴 뿐이다. 그래서 내년 상반기에는 잠시 모든 쓰기의 압박을 내려놓고 오직 채우는 일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벼락치기처럼 보일지라도 나는 다시 학생의 자세로 돌아가 책을 읽는 데 몰두할 것이다.

읽고, 사유하고, 음미하는 시간. 좋은 문장들을 천천히 곱씹으며 그 안에 담긴 삶의 결을 느끼는 시간. 작가들이 평생을 걸쳐 발견한 진실을 겸손하게 배우는 시간.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독서의 시간들이 언젠가 내 글에 깊이와 무게를 더해줄 것이라 믿는다.


매일 해 뜨면 다시 또 내 자신과
전투준비 하느라 나 바뻐
세상에 만만한 거 하나 없지
노력 없이 날로 먹는다는 거 억지
성공의 절대 전제 '노력이 첫째'
대기만성 우리는 노력의 천재

매드크라운, 노력의 천재


배우 박정민이 꾸준함으로 '노력의 천재'가 되었듯이 나는 내년 상반기를 '입력의 천재'가 되기 위한 시간으로 삼으려 한다. 텅 비어버린 우물에서 억지로 마지막 한 방울을 짜내려 하기보다 충분히 맑고 깊은 물로 다시 채운 후에야 비로소 더 가치 있고 생명력 있는 글을 길어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다시 깊어질 시간이다. 조급하게 무언가를 내놓으려 하기보다 천천히 내면을 풍성하게 가꾸는 시간. 그것이 결국 진짜 노력이 아닐까. 올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나는 비로소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서는 기분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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