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뿌리내리지 못한 이곳도 그리워질까?

이삿날 D-3

by 꿈꾸는 나비


○○. 이곳에 온 게 22년 9월 15일이었다. 길어봤자 2년이면 되겠지 했는데 어느새 3년이 훌쩍 넘어버렸다. 있을수록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자 적응이 유난히도 어려웠던 곳이면서도 근래 가장 평온했던 곳이기도 했다. 참 아이러니하다. 짧다면 짧은 3년, 길다면 긴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곳에서도 희로애락 하나의 삶이 가득 담겨 있다.


우리는 늘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자리에 있다. 태어난 이곳 한국이라는 나라도 그리고 지금 부산이라는 도시도. 그중에서도 ○○에 살게 된 건 내 의지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고 느꼈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누가 정해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도 아닌 듯한 그런 자리다.


계획이란 걸 잘 세우지 않는 나에게는 늘 후폭풍이 따르곤 했다. 알면서도 늘 즉흥적으로 선택했고 그만큼 예기치 않은 인연과 시간이 찾아왔다.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은 어설픈 나의 첫 부동산 투자였다. 공동투자를 제외하면 온전히 혼자 한 첫 시도다. 늘 겉핥기식으로 공부해 온 탓에 모든 게 미숙했다. 명확한 기준도 없이 그저 '살면 좋겠다' 싶은 요소 몇 가지만 붙들고 고른 동네였다. 강이 보이고, 산이 가깝고, 조용하고. 그런 식으로 내 선택은 막연했다. 그리고 개인취향적(?) 선택이 많았다. 그 결정의 대가로 얻은 건 장거리 출퇴근이었다.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저녁엔 지쳐 돌아왔다.


하지만 그 긴 길이 나에게 선물한 것도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 출퇴근 길 두세 시간이 자연스럽게 내 시간이 되었다. 약속은 줄어들었고 사람들과의 관계는 멀어졌다. 대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었다. 책도 읽고, 드라마도 보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게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으니 잃은 줄로만 알았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무언가가 자라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곳은 이상하게도 정착의 온기가 없었다.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동네에 잠시 머물다 가는 느낌이다. 뿌리를 내리기는커녕 발끝으로 살짝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기분이었다. 늘 마음 한편엔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이건 잠시일 뿐이라고 늘 마음을 허공에 띄워 두고 있었다. 나는 언제는 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주말에만 다녀가는 딸이 말했다.

"엄마, 정작 이사 가려고 하니까 뭔가 아쉬워. 그치?"


내 마음을 들킨 듯했다. 나는 이곳에 정이 없다고 확신했는데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켠이 서운했었던 모양이다. ○○에 대해 별로 정 준 게 없다고 여겼건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무너졌다. 이 동네 구석구석, 자주 가던 카페, 산책하던 강변길, 익숙해진 버스 정류장. 그 모든 게 문득 소중하게 느껴졌다.


새로움은 설레지만 마지막은 늘 시원섭섭하다. 덧없게 떠나려다가도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남은 날을 마무리하며 과연 이곳을 그리워하게 될지 상상해 보니 등이 살짝 서늘해진다. 아마도 그리워하게 되겠지.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


지난 일요일 딸이 했던 그 한마디가 새벽부터 조용히 귓가에 남는다.

아쉬워,라는 그 말. 나도 그랬다.

많이 그리울 거야. ○○아, 고마웠어.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이전 09화조각을 모아 나를 완성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