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왠지 서둘러 연말을 맞이하고 싶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올 한 해가 충만했다는 뜻이다. 올해 이루고자 했던 굵직한 목표들을 하나씩 달성했기에 서둘러 새해 계획을 짜고 싶은 마음이 있다. 종이책 두 권 발행, 몇 년간 벼르던 이사, 인간관계 정리, 어제보다 단단한 마음 세우기, 글쓰기가 일상이 되기, 춤 배워보기까지 돌이켜보면 작지 않은 변화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책이 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단단해지는 건 아니니까. 조각조각 모은 하루들이 쌓여 결국 오늘의 나를 완성했다.
연말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적게 된다. 하지만 숫자를 채운다고 다음 해가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올해 내가 이룬 것들을 생각해 보면 계획보다 중요한 건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가였다.
바쁠 때는 오히려 일상이 잘 굴러가는데, 꼭 여유가 생기면 흐트러지고 잠깐의 쉼이 나태로 이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나를 잘 돌보고 있는지, 하루 중 나만의 시간을 가졌는지, 마음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알아차렸는지, 피로를 외면하지 않았는지, 무기력을 방치하지는 않았는지, 무엇이 나를 채우고 무엇이 나를 소모시키는지 그 질문에 솔직히 답해보는 시간이 나를 다시 세우는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나는 하루 한 장, 기록하는 루틴으로 돌아온다. 셀프케어의 루틴이다. 기록은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나를 바라보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먼저 아침일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에 쓸 때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감정들을 주로 적지만, 새벽엔 하루를 계획하고 긍정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좋다. 오늘 지킬 단 하나, 피하고 싶은 감정이나 습관, 그리고 오늘의 마음 자세들에 대해 쓴다. 하루가 어디로 향할지를 먼저 세워두면 흔들려도 크게 휩쓸리지 않는다.
대신 밤에는 짧게나마 지킨 것과 놓친 것, 이유, 오늘 칭찬할 점, 가장 인상적인 장면, 내일을 위한 한 문장을 떠올려본다. 실패를 세지 않고 하루를 부드럽게 덮어두며 가볍게 흘려보내는 시간이다.
기록은 반성이 아니라 관찰이다. 스스로를 혼내기 위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위치를 알면 길을 잃어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아침 시간과 하루 끝의 5분 남짓 끄적여 보는 글들 그리고 실시간으로 남긴 작은 메모들. 이 조각들이 쌓여 결국 나를 완성한다. 올해 내가 이룬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하루가 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조금씩 붙잡아 둔 마음이 나라는 사람을 완성해 가고 있다. 매일 조금씩 쌓은 글이 책이 되고, 매일 조금씩 다듬은 마음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언젠가 나만의 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이 루틴이 큰 힘이 될 것이다. 기록은 글을 위한 과정이자 나를 알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꾸준히 쓰고, 감정과 습관을 관찰하며, 나만의 언어를 한 줄씩 쌓아가는 루틴이 좋다. 기록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나를 조각조각 모아 다듬어가는 일이다. 오늘 남긴 한 줄이 모여 내년의 나를 완성할 것이다.
이제 곧 연말이니 지금 시작하면 딱 좋다. 올해를 잘 이룬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기세를 이어가고 싶다면 한 해를 정리하며 나를 돌아보고, 새해를 준비하며 나를 다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년 이맘때쯤이면 지금보다 더 아름답게 완성된 내가 되어 있으리란 상상을 하면서.
지금부터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해 보자. 나를 위한, 나에게 건네는, 작지만 단단한 약속 하나로. 조금씩 쌓아 둔 문장들 속에서 더 아름다운 나비의 날갯짓이 펼쳐 보이자.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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