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문장에 대하여

by 꿈꾸는 나비

요즘 나는 '왜 쓰는가'를 묻지 않는다. 글쓰기는 일상이다. 새벽에 눈 뜨면 일기를 쓰고, 길을 걸으면 풍경이 문장으로 번역된다. 이것 좀 가져다 쓸까 나에게 묻는다. 글쓰기는 이제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그 자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익숙해질수록 더 불안해진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이 질문이 '왜 쓰는가'보다 훨씬 무겁게 남는다.


AI가 문장을 만들어주는 시대가 왔다. 키워드 몇 개면 완벽한 글이 뚝딱 나온다. 문법도 맞고, 논리도 탄탄하고, 비유까지 적절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글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너무 매끈해서 손 닿을 틈이 없다.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처럼 정확하지만 어디에도 숨결이 없다. 그럼 기계가 대신 쓸 수 없는 문장은 뭘까.


얼마 전 TV에서 '저스트 메이크업'을 봤다. 사람의 마음을 울린 건 화려한 '기술'이 아니었다. 모델과 아티스트가 함께 만든 '순간'이었다. 서로의 호흡, 눈빛, 미묘한 온도. 그건 아무리 정교한 기술로도 흉내 낼 수 없었다. 글도 마찬가지다. AI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패턴을 찾는다. 하지만 서로 다른 분야를 연결하고, 맥락 속에서 의미를 새롭게 짓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과학과 시를 엮고, 일상에서 철학을 발견하고, 개인의 경험을 보편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 AI가 제공하는 건 데이터의 배열이지만 인간이 만드는 건 경험의 서사다.


경험의 서사를 쓴다는 건, 결국 진짜로 느낀다는 것과 연결된다. AI는 공감하는 척은 할 수 있어도 진짜로 느끼지는 못한다. "힘드시겠어요"라고 말할 순 있지만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그 무게를 알지는 못한다. 슬픔의 질감, 기쁨의 온도, 망설임의 떨림. "그런 건 원하지 않는다"라고 날을 세우면 이내 "미안하다"라고 답한다. 빠른 사과조차 와닿지 않는다. 감정 같은 건 학습 데이터로 전달되지 않는다. 오직 직접 겪은 사람만이 그 순간을 통과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


나는 문장력을 뽐내는 글보다 사람의 결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다. 읽는 이가 "이건 사람의 말이구나" 하고 느끼는 글 말이다. AI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다움'이 경쟁력이 된다는 말이 실감 난다. 완벽한 문장보다 떨리는 문장이, 정제된 표현보다 날것의 고백이 더 깊이 닿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글로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이 문장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까 아니면 상처가 될까. 내가 전하는 이야기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게 만들까. 글을 쓴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단어, 배치한 문장, 남긴 여백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다.


요즘 나의 글쓰기는 정답을 찾는 일이라기보다 그냥 질문을 붙들고 있는 과정에 가깝다. 오늘은 이런 글이 좋다 싶다가 내일은 너무 꾸민 것 같아 마음에 안 든다. 퇴고할 때가 그래서 괴롭다.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 보면 쓰레기 같은 글이다. 그래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고민의 시간 속에서만 내 문장이 조금씩 자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일상의 작은 것들을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된다. 비 오는 날 창가에 앉아 있던 기억, 누군가의 목소리가 떨렸던 순간, 말없이 손을 잡아주던 그 온기. AI는 이미 그림을 잘 그리고 음악을 잘 만든다. 하지만 '삶의 결'을 느끼는 예술적 감각은 인간만의 언어다. 감정, 기억, 체험에서 비롯된 창작은 학습으로 대체되지 않는다.


나는 오늘 아침 마신 커피의 쓴맛을, 어제 본 석양의 색을, 지금 이 순간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의 감촉을 기억한다. 이 모든 것이 내 문장의 재료가 된다. AI는 '커피'를 설명할 수 있지만 내가 마신 그 커피의 맛은 오직 나만 쓸 수 있다. 결국 감성은 지능을 이긴다는 말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나를 발견한다. 나는 왜 이 문장을 쓰려고 하는가. 이 표현이 정말 내 생각을 담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바라는가. AI는 "나 자신이 왜 이렇게 느끼는가"를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질문하고, 흔들리고, 그 안에서 성장한다.

막연하게 느꼈던 감정이 문장으로 드러나는 순간 비로소 그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쓰기 전에는 몰랐던 생각이 쓰는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단순히 정보를 출력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대화하는 행위다. 결국 글쓰기는 탐구의 기록이다. 무엇이 진짜 내 말인지,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그걸 천천히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AI 시대에 필요한 건 '효율적인 인간'이 아니라 '깊이 있는-데이터를 해석하고, 감정을 느끼며, 의미를 만들어내는 - 인간'이 아닐까. 잘 쓰는 글보다 살아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누가 대신 써줄 수 없는 문장, 내 시간과 마음의 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서툴러도 좋다. 대신 진짜여야 한다. 그런 글이라면 AI 시대에도 충분히 인간만의 자리에서 끝까지 숨을 쉬고 있을 것 같다. 기계가 만든 완벽한 문장들 사이에서 떨리고 거칠지만 따뜻한 인간의 문장이 더 선명하게 빛날 것이다. 결국 글쓰기는 인간으로 존재하는 방식 중 하나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나만의 목소리로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Pinterest

keyword
이전 07화혼자,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