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독을 씹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조명을 끈다.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아무 의욕도, 무엇을 해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빽빽한 일정에 치여 미뤄둔 일도, 딸아이와 함께하느라 접어둔 욕심도 이 정적 앞에서는 무용하다. 그저 가만히 있고 싶을 뿐이다. 이 고요가 언제 깨질지 몰라 최대한 길게 붙들고 싶다. 혼자만의 고독을 입안에 넣고 오래도록 씹는 시간이 좋다.
그러다 보면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한 끝. 이 선을 넘으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 같은 아찔한 예감. 그제야 몸을 일으킨다. 미뤄둔 청소를 하거나 주변을 정리한다. 그것조차 여의치 않으면 이유를 묻지 않고 신발을 신는다. 밖으로 나간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며 내 안의 어두운 것들을 환기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드라마를 몰아보며 누워 있는 날도 있다. 얼마 전 보았던 드라마 <러브 미>의 한 대사가 귓가에 남는다.
“외로움을 자처하는 사람 같았어요.”
끝없이 외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 여주인공과 마음이 닿기 시작할 무렵 남주인공이 건넨 그 말이 내내 마음을 맴돈다. 이어 <경도를 기다리며>를 보았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꼼짝없이 누워 보낸 시간이었다. 우울의 심연으로 침잠하는 여자와 알코올 중독에 허우적대던 남자의 시간을 보며 생각했다. 저 한 끝을 놓았더라면 나 또한 저 모습이었겠구나. 그 서늘한 자각에 자리에서 퍼뜩 일어났다.
오랫동안 내가 회복되었다고 믿었다. 이제는 가라앉지 않을 상태라고, 지금의 평화가 온전하다고 여겼다. 그러다가도 ‘괜찮아졌다’는 말보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자각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을 새삼스레 인지한다.
어둠은 여전히 내 안에 있다. 다만 깊이 숨겨두었을 뿐이다. 꺼내지 않겠다고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둠의 한 끝은 여전히 여기 있다고 속삭인다. 동시에, 굳이 꺼낼 필요는 없다고 나를 다독이는 목소리도 있다.
모든 것은 딱 한 끝 차이다. 그 선을 넘느냐 넘지 않느냐, 그 태도에 따라 삶의 방향이 갈린다. 나는 더 이상 마이너하고 어두운 삶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게는 사람이 필요하다. 홀로 두면 위험하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내게 딸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다. 내 책임이자 사명처럼 찾아온 아이. 잠시 아이와 떨어져 누리는 자유로운 시간이 여전히 나를 흔들고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도, 나는 한 끝 앞에서 기어이 돌아설 줄 아는 사람으로 남는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