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냥'이라고 할 때

by 꿈꾸는 나비

'그냥'이라는 말이 있다. 자주 쓰지만 설명하려 들면 말문이 막히는 단어. 아무 뜻도 없는 듯 비어 있다가도 세상 모든 뜻을 머금은 듯 무거운 이 말은 던져지는 순간 설명은 멈추고 해석은 오롯이 상대의 몫으로 남는다. 말은 던져졌으나 닫히지 않는 언제나 열린 결말인 셈이다.


"왜 전화했어?" "그냥."

"무슨 생각해?" "그냥."

"왜 그랬어?" "그냥."


이유를 묻는 질문 앞에서 혹은 스스로도 모를 마음 앞에서 이 말을 꺼낸다. 늦은 밤 뜬금없는 전화에 대한 변명으로, 멍하니 하늘을 보다 들은 채근에 대한 답으로,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이 말을 도구처럼 꺼내 쓴다.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싶은 마음들을 '그냥'이라는 보따리에 마구 집어넣어 스스로 짊어지는 것이다. 복잡한 사연을 풀어놓기엔 너무 피곤하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거나, 상처 주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정말로 이유를 모를 때. 때로는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감정 앞에서 '그냥'을 내민다. 왜 울컥했는지, 왜 화가 났는지, 왜 마음이 시렸는지 모를 때.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변명처럼 들릴까 봐 그저 "그냥 그래"라고만 중얼거린다. 그렇게 우리는 '그냥'이라는 두 글자로 모든 말을 대신한다.


흥미로운 건 이 단어가 품은 온도의 폭이다. "그냥 좋아"라고 할 땐 조건 없는 투명한 호감이 된다. 이유 따위 없어도 되는 계산이 끼어들 틈 없는 순수한 마음. "왜 좋아해?"라는 질문 자체가 무색해지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감정이라는 걸 우리는 이 말로 증명한다. 하지만 같은 단어가 "그냥 그랬어"가 되면 이번엔 기대를 깎아낸 무덤덤한 체념이 된다. 별것 아니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물러서는 말투. 실은 별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무게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오래된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그냥 놔둬"라며 고집을 피울 때, 이 말은 차마 설명 못 할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 된다. 낡은 신발, 빛바랜 사진, 금 간 머그컵. 실용적 가치는 없지만 추억의 무게만큼은 묵직한 것들을 우리는 '그냥'이라는 말로 지킨다. 이토록 가볍게 던져지지만 깊고 넓게 이 말은 감정의 모든 결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냥'은 정의하기 어렵다. 비겁한 회피 같다가도 지독한 고백 같은 말하지 않음과 말함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걸쳐 있는 말. 잠시 숨을 고르며 마침표를 미루는 쉼표. 어떤 순간, 이 말은 도피처가 된다.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설득하지 않아도 되며, 나 자신과도 싸우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피난처. "그냥"이라고 말하는 순간 모든 추궁은 멈추고 대화는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편하다. 하지만 동시에 쓸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순간 이 말은 가장 솔직한 표현이 되기도 한다. 언어로 다 담아낼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마음을 오히려 '그냥'이라는 빈 그릇에 담아 건네는 것. 받는 사람이 알아서 채워 넣기를 바라는 믿음의 몸짓. "내 마음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당신이라면 알아주리라" 하는 기대. 그러니까 '그냥'은 때로 비겁하지만 때로 용감하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역설. 침묵과 고백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 있는 단어다.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그냥'으로 흐른다.


"오늘 뭐 했어?"

"그냥 있었어."


"왜 안 왔어?"

"그냥."


"이거 왜 샀어?"

"그냥 사고 싶어서."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니, 그냥."


다 전하지 못한 진심, 이름 붙이지 못한 기분, 훗날에야 깨달을 이유들까지. 그 모든 복잡함을 잠시 접어두기에 이보다 다정한 단어는 없다.


우리는 매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을 산다. 설명하려다 지쳐버릴 감정들, 논리로 풀어내기엔 너무 뒤엉킨 관계들, 이해받기를 포기한 선택들. '그냥'은 그런 순간들을 품어주는 부드러운 말이다. 때론 무책임해 보이기도 한다. "그냥"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처럼 대화를 차단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을 설명할 의무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내 마음을 말로 옮기는 것도 상대가 이해하도록 만드는 것도 때로는 너무 벅찬 일이니까. 어쩌면 '그냥'은 정직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잘 모르겠어", "말하고 싶지 않아", "설명할 수 없어"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 거짓말하지 않으면서도 전부를 드러내지 않는 방법이다.


그러니 '그냥'을 모호한 말이라 부르지 않기로 한다. 대신 여백이 많은 말이라 부르고 싶다. 완성되지 않은 그림, 끝나지 않은 문장, 아직 해석되지 않은 이야기. '그냥'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다. 비어 있지만 텅 빈 게 아니라 무언가로 채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 누군가는 그 빈칸을 오해로 채운다. "그냥이 무슨 뜻이야?"라며 답답해하거나, 차갑게 느끼거나, 숨겨진 뜻을 억지로 끄집어내려 애쓴다. 불안해서 혹은 무시당한다고 느껴서 그럴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빈칸을 이해로 비워둔다. "그래, 말 안 해도 돼"라며 편하게 놔두고 때가 되면 말하리라 믿으며 기다려준다. 서두르지 않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 또 누군가는 자기만의 문장으로 덧그린다. 상대가 하지 않은 말을 자신의 경험과 감정으로 채워 넣으며 나름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의 '그냥'을 이해한다.


그렇게 '그냥'은 저마다의 색으로 물든다. 같은 말이지만 같은 뜻이 아닌 같은 단어지만 같은 무게가 아닌 말이 된다. 그래서 이 말은 언제나 미완성이고, 언제나 진행 중이며, 언제나 열려 있다.


우리가 '그냥'이라고 할 때, 우리는 사실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복잡함을, 말로 옮기기엔 너무 큰 감정을,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을... 혹은 그저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그냥으로 퉁쳐버린다.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처럼 우리는 오늘도 '그냥'이라는 말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다 하지 못한 말들을 품은 채, 다 전하지 못한 마음들을 안은 채. 그것이 때론 아쉽고, 때론 다행이고, 때론 그저 그런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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