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안 되는데 이상하게 계속 읽게 되는 소설

말뚝들, 김홍

by 꿈꾸는 나비

책을 고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꼼꼼히 살피는 사람이 있고, 서점에서 표지에 꽂혀 집어 드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의 추천 한마디에 바로 검색창을 여는 사람이 있다. 나는 주로 마지막 쪽이다.



김홍 작가의 『말뚝들』을 읽게 된 것도 그렇게 시작됐다. 배우 박정민의 인터뷰를 보다가 우연히 이 소설을 추천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특히 경찰서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눈을 반짝이며 설명하는데, 듣다 보니 묘하게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소설이길래 그 장면이 그렇게 인상적이었을까.


인터뷰에서 김홍 작가는 소설을 쓸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개연성"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말뚝이 왜 오느냐, 그 일이 왜 일어나느냐 같은 질문들. 그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더 궁금해졌다. 말뚝이 찾아온다는 이야기라니. 호기심을 잔뜩 품은 채 서둘러 책을 펼쳤다.


그런데 막상 읽는 동안에는 개연성 같은 건 굳이 따지지 못했다. 누군가 어떤 책이 좋다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이유까지 미리 머릿속에 담아두고 책을 펼친다. '이 장면이 인상적이라고 했지', '이 부분에서 울었다고 했지' 하면서. 근데 막상 읽다 보면 그 기대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냥 이야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이 온다. 『말뚝들』이 딱 그랬다. 말뚝이 왜 왔는지,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같은 질문들이 읽는 동안에는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그 세계 안에서 흘러가게 됐다.


읽다가 혼자 웃었던 대목이 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방금 것도 생각에 대한 생각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p.90)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어지는 그 기묘한 순간. 작가는 그 단어가 마치 팔각처럼 요리에 쓰는 향신료 이름 같다고 쓰는데, 읽으면서 '맞아, 그 느낌이야' 싶었다. 한 단어를 너무 오래 들여다보면 갑자기 그게 한글인지도 모르겠어지는 그 기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혼자 낄낄댔다.


이 작가는 혼자 뭐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야, 싶은 지점을 속속들이 골라 그냥 내뱉는다. 시시콜콜한 혼잣말을 속으로 삭이지 않는다. '이 말을 해, 말아' 싶은 생각까지 문장으로 만들어버린다. 읽다 보면 인물의 머릿속을 그대로 따라다니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이상하게 편안하다. 완벽하게 정돈된 생각을 말하는 사람보다 중간에 삐걱거리고 스스로 말을 번복하는 사람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매번 그런 식으로 샛길로 새곤 하는데, 이 소설은 그 샛길이 곧 본길인 것처럼 읽힌다.


작가 인터뷰를 먼저 보고 읽어서인지 장이 곧 작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시시콜콜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들을 읽다 보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이 종종 있었다.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박정민이 언급했던 경찰서 장면도 그랬다. 경찰의 심드렁한 태도에 발끈하는 장면인데, 읽으면서 묘한 쾌감과 함께 괜히 웃음이 났다. 억울한 상황에서 상대가 무심할수록 더 진지해지는 그 리듬. 살면서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감정이라 더 몰입해 읽었다.


읽는 내내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많았다.

말뚝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집에 말뚝이 왔는데 다음 날 공항에 데보라를 마중 나갈 수 있는지, 헤어진 연인 해주의 갑작스러운 전화는 무엇을 뜻하는지. 따지고 들면 이해 못 할 장면들이 수두룩하다.


근데 신기한 게, 그게 별로 거슬리지 않았다. 보통 이야기의 앞뒤가 안 맞으면 책을 덮고 싶어 지는데, 이 소설은 달랐다. '이게 왜 이래?'라는 질문이 드는 순간에도 손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상했던 설정이 하나 있다. 말뚝을 보는 사람들은 이유도 모르고 계속 운다는 것이다. 왜 우는지 설명이 없다. 그냥 운다. 처음에는 그게 낯설었는데, 읽다 보니 이상하게 그 설정이 머릿속에 남았다. 이유 없이 울어야 하는 상황이라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나. 딱히 슬프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는 날. 왜 우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어려운 그런 울음. 소설은 그 감정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채로 그냥 내버려 둔다. 근데 그게 오히려 더 진짜 같았다. (다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소설 속에서 장에게는 급작스러운 납치 사건이 일어난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은 평소 믿지도 않던 신을 떠올리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그렇다. 시험 전날 밤, 오늘만 좀 봐달라고 어딘가를 향해 빌었던 경험이 한 번쯤 있지 않나. 평소에는 그런 거 안 믿는다고 해놓고.


장 역시 그렇다.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신을 탓한다. 신을 믿지 않아서일까, 신성 모독을 일삼아서일까, 친구를 고발해서일까. 하지만 그 어떤 이유도 장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불행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 그걸 소설은 아주 솔직하게 보여준다.


읽으면서 오래 붙잡고 있었던 문장이 있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대목이다.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빚들을 떠올렸다. 딱히 갚지 못한 것들,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못 했던 순간들. 그런 게 오히려 나를 어떤 관계 안에 묶어두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황 발작이 덮쳐오면 장은 말뚝의 하얀빛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살면서 본 다른 빛이 많지만 그 빛처럼 힘을 주는 빛은 많지 않았다고. 그때 생긴 구멍과 그때 생긴 빛이 싸울 때, 장은 빛을 더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읽으면서 '빚'과 '빛'이라는 단어가 자꾸 겹쳐 보였다. 결국 우리에게 오래 남는 것은 누군가에게 진 마음의 빚이거나, 어떤 순간 스쳐 지나갔던 빛 같은 기억일지도 모르겠다. 발음도 비슷하고, 무게도 비슷하다.


적어두었던 문장도 두 개 있다.

"타인을 해치려는 사람은 자신을 걸어야 하므로,
아무도 나를 끌어내릴 수 없다." (p.233)


"인간의 잠재력은 삶에 대한 의지에 가로막혀 있다." (p.226)


두 문장 다 읽을 때는 '이게 무슨 뜻이지?' 싶었는데, 덮고 나서도 자꾸 떠올랐다. 그게 좋은 문장의 방식인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이해되는 것보다, 나중에 어떤 순간에 갑자기 떠오르는 문장.


책을 다 읽고서 처음 봤던 인터뷰 영상을 다시 틀어보았다. 읽기 전에는 그냥 지나갔던 말들이 읽고 난 뒤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같은 말인데 무게가 달라지는 그 느낌. 책을 읽고 나서 추천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나는 판타지에는 약한 편인데, 이상하게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선택을 하는 인물들이 계속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반나절 만에 후루룩 읽어버렸다.


이해는 다 못 했다. 근데 오래 남는다.

그걸로 충분한 소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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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 배우 박정민 추천으로 읽음



나비의 끄적임에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