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때까지 괜히 내가 태어나서 여성 양육자의 인생을 망쳤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나를 키운 여성 양육자는 전업주부라고 믿기 힘든 스펙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는 여성 양육자가 커리어를 갈고닦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면서 자랐다. 그런데 그 대단한 경력도 나를 키우다가 허무하게 끊겼다.
여성 양육자가 나를 낳지 않았으면 힘들게 쌓아올린 경력이 망가지지도 않았고, 남성 양육자의 학대를 견딜 이유도 없었으리라는 죄책감이 나를 갉아먹었다. 진심으로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실제로 “태어나서 죄송하다, 내가 엄마 인생을 망쳤다‘고 여성 양육자에게 여러 번 말했다. 여성 양육자는 그때마다 본인이 원해서 낳았으니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답했지만 내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을 보고 자랐다. 부부싸움 소리를 듣는 게 일상이었고, 이 상황이 문제라는 것도 몰랐다. 남성 양육자는 돈을 무기로 여성 양육자의 모든 것을 통제했다. 나를 맡길 사람이 없어서 여성 양육자가 직장을 그만둔 뒤로는 더 심해졌다. 어렸던 내가 봐도 가관이었다. 여성 양육자가 두 손을 모아서 내민 채로 남성 양육자에게 돈을 달라고 비는 꼴도 봤다. 여성 양육자는 나한테 너 학원 보내느라 매일 친구들에게 돈을 빌린다고 했다. 나중에는 제3금융권 대출까지 받았다. 경제권을 쥔 남성 양육자가 교육비를 주지 않고 버텼기 때문이다. 만약 가정 형편상 교육비를 내줄 수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남성 양육자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 양육자는 돈을 충분히 벌면서도 지원을 거부했다. 자신은 자수성가했으니 나도 똑같이 고생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배우고 싶은 게 있어서 학원에 다니면 “아등바등 살지 말라"면서 그만두라고 압박했다. 열심히 다녔더니 내가 여성 양육자에게 세뇌된 것 같아서 불쌍하다고 가스라이팅했다. 학원비를 주지 않아서 여성 양육자가 돈을 긁어모아 학원에 계속 보냈다. 영어를 공부해서 말이 유창해지니까 “외국어 발음이 너무 좋으면 사람들이 껄끄러워한다"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로 내 성취를 깎아내렸다. 중학생 때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는데 1년에 50만원 하는 등록금을 가지고 돈이 아까우니까 등록하지 말라고 했다. 자율형 사립고에 합격하니까 등록금을 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면서 여성 양육자를 들볶았다.
대학 입시가 끝나갈 때쯤 여성 양육자는 남성 양육자의 반복적인 학대에 지쳐 무너졌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앞에서 남성 양육자를 원망하면서 흉을 보던 여성 양육자가 어느 날 이상한 말을 했다. '아빠' (=남성 양육자)가 돈을 벌어다 주니까 감사해야 한다 (남성 양육자와 그 가족들이 육아를 여성 양육자에게 독박씌우지 않았으면 돈은 여성 양육자도 벌 수 있었는데?). 처음부터 '아빠'가 하자는 대로 너를 키웠으면 너도 덜 아팠을 것이다 (나는 남성 양육자의 이상에 동의하지도 않고 거기 맞춰서 크고 싶지도 않았는데?). 차라리 '아빠'가 자신 말고 평범하고 넉살좋은 여자를 만났으면 너도 행복하게 컸을 것이다 (그랬으면 내가 아닌 다른 자식이 나왔을 텐데?).
알고 싶지 않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있다. 가해자가 시키는 대로 했으면 중간은 갔겠다는 생각. 괜히 저항하다가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 끊임없는 학대가 여성 양육자를 집어삼켰다.
여성 양육자를 이렇게 만든 집구석에 계속 있다가는 나도 똑같이 망가지겠다는 생각이 치고 들어와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다음해 나는 집을 나갔다. 내가 더이상 엄마라고 부르지 않는 사람의 인생을 답습하기 싫어서 준비가 덜 된 것을 뻔히 알고도 뛰쳐나갔다.
*대학에 다니는 내내 남성 양육자가 등록금을 끊어서 졸업하지 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았다. 나도 학교 근로로 알바를 했지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는 한참 부족한 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인 통제 때문에 졸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다 지쳐서 휴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