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30 더인디고 게재
최근에 받았던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정상’과 다르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장애라는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 기회는 허탈할 정도로 늦게 찾아왔다.
브래지어만 차면 목을 졸리는 것 같았다. 등에 닿는 끈의 감촉 때문에 숨을 쉬기 어려웠다. 학교 체육복 반바지 고무줄 때문에 배가 아파서 가위로 허리끈을 끊어 입었다. 학교 점심시간에 다른 학생들이 교실에서 아이돌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면 시끄러워서 매일 도망 나갔다. 교복을 입기 힘들어서 체육복을 입고 다니면 보수적인 교사들이 “태도가 불량하다”며 괴롭혔다.
어렸을 때는 “사회생활 못하는 부적응자”라는 폭언을 곧이곧대로 믿고 자책했다. 부모조차 내가 “덜 맞아서” 이상하게 군다고 생각했다. 자폐인이기 때문에 비장애인 사회가 원하는 ‘정상’의 기준과 부딪힌다고 생각해 볼 기회는 없었다. 자폐 정체성을 일찍 알고, 내 특성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피해 갈 수 있었을 폭력이다.
왜곡되고 비가시화된 자폐여성 정체성
비장애인 사회는 자폐를 모른다. 자폐인 여성은 더더욱 모른다. 그래서 자폐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당사자도 짐작하기 힘들 만큼 비가시화되어 있다. 어렸을 때는 자폐인이라면 대부분 남성에 공감능력도 감정도 없고 수학에 비상한 재능이 있고 물건을 줄 세우는 것 같은 특이한 행동을 반복하는 줄 알았다. 나는 물건을 줄 세우고 싶어 했던 적 없다. 수학을 못 하지도 않지만, 천재적인 업적을 세우고 있지도 않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는커녕 주변 사람들보다 풍부하다. 여성성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남성은 더더욱 아니다. 그래서 자폐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살았다.
자폐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착각이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스스로 자폐인이라고 밝힌 사람과 이야기해 볼 기회가 없었다. 미디어에서 묘사하는 자폐인의 모습을 보고 내 모습과 연결하기도 어려웠다. 자폐인은 비인간적이고 왜곡된 모습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 데다 남성만 나오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공식블로그를 통해 “자폐인은 감정이 없고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서 편견을 사실처럼 적어놓았다. 공신력 있는 사이트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많이 보는 한국어 위키백과 자폐 항목도 “공감 능력 결여,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이 자폐의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자폐인도 감정을 느끼고 공감한다. 표현하는 방식이 비장애인과 다를 뿐이다. 그런데 자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은 자폐인의 표현 방식을 놓치고 “감정과 공감 능력이 없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방금 언급한 사이트들도 이렇게 왜곡된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실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위키백과에서 언급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은 주로 남성 자폐인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어서 여성 자폐인과는 접점이 적은 내용이다. 남성에게 한정된 특징을 자폐인 전체의 특징인 것처럼 서술하면 여성 자폐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기 어려워진다. 실제로 공식적으로 자폐 진단을 받은 사람 중에서는 80% 이상이 남성이다. 외국의 한 논문(Supekar, K,& Menon, V.)에 따르면 자폐 연구는 남성 자폐인 위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폐여성 차별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를 찾을 수 없어서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인다. 내가 아는 여성 자폐인 중에서 공식적으로 자폐성장애인으로 등록하고 지원을 받는 데 성공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비장애인과 행동이 지나치게 달라서 일반 회사에 취직하기 어려운 사람도 장애등록을 받지 못해 미등록 장애인으로 지낸다. 진단을 받으려고 시도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능이 평균 이상인 자폐인 여성에게는 절대로 장애 등록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지적장애가 없는 자폐 여성은 자폐 때문에 차별당하면서도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으로 경쟁해야 한다. 비장애인이라면 하지 않아도 될 ‘노오력’으로 차별을 뚫고 비장애인 사회에 섞여들라는 요구를 받는 것이다. 장애 때문에 차별당해도 서류상으로는 비장애인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렵다. 이렇듯 자폐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진단 기준 때문에 장애를 인정받기 어려워서 사회안전망 밖에서 살아야 한다.
스스로 공부해서 찾은 자폐 정체성
나에게도 자폐 정체성을 공식적으로는 인정받을 기회는 없었다. 좀 뜬금없지만 내가 자폐인으로 정체화하게 된 계기는 뇌과학에서 나왔다. 10대 때 뇌과학에 관심이 생겨서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라는 책을 읽다가 신경다양성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봤다. ‘정상’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니 특이한 사람을 밀어내는 대신 다양성의 일부로 보겠다는 시선이 반가웠다. 내 경험을 대변하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때는 대학입시 때문에 바빠서 더 깊게 알아보지는 못했다.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야 신경다양성에 대해 알아볼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생겼다. 한국어권 인터넷에는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서 영어권으로 옮겨갔다. 영어권 신경다양성 커뮤니티의 주류인 자폐 당사자들이 자기 경험에 대해 쓴 글을 무더기로 읽었다. 우리나라 인터넷과는 달리 당사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춘 자료에 접근하기 쉬웠고, 당사자가 직접 쓴 글도 레딧(영어권 온라인 커뮤니티)이나 인스타그램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내가 읽은 글 속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이상한 아이로 찍혀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신경전형인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둔하거나 예민한 감각 때문에 고생하고’, ‘서류전형에는 자주 합격해도 면접만 보러 가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계속 탈락하는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경험을 분석할 언어와 개념이 고파서 당사자들의 말하는 자폐 이야기를 홀린 듯이 빨아들였다. 외국 대학에 진학해서 자폐인이라고 밝힌 동기들을 만난 뒤로 자폐를 완전히 확신하게 되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용기
요즘 나는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고 다닌다. 처음에는 스티커나 캐미솔 같은 대체품을 썼지만 지금은 유두가 드러나도 그냥 다닌다. 작은 체구지만 2XL, 3XL처럼 큰 사이즈가 나오는 브랜드를 찾아서 옷을 사 입는다. 옷가게 주인이 이상하게 봐도 큰 게 편하다고 말하고 그냥 산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도 소음 때문에 힘들면 양해를 구하고 헤드폰을 쓴다. 사회가 바라는 ‘정상’에서 이탈하더라도 자폐여성인 나의 몸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결심을 이렇게 실천한다.
자폐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은 비장애인 사회에서 욕을 먹어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살 용기를 내는 과정이다. 내 모습을 낮춰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여전히 두렵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받쳐주기에 매 순간 용기를 낸다. 누군가 이 글을 보고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볼 확신을 얻기를 바란다.
이 글의 원본은 장애 일간지 더인디고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