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가 고장날 지라도(장편 소설)
16 : 온정의 시야
그 날 밤에는 별안간 또 꿈을 꾸었다. 아니, 사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잠에서 깬 것 같은데 잠에서 깨지 못한 것도 같았다. 정신이 그렇게나 또렷한데, 아무리 온몸에 힘을 주어보아도 밧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전신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건 기실 환각에 가까운, 참으로 생경한 경험이었다.
간신히 시선만을 옆으로 옮겼다. 발끝부터 턱끝까지 얽매이는 듯한 감각에 불안감이 엄습하는 와중에, 나는 익숙한 나의 방에 누워있었다는 사실이 정말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시선 너머의 책상 위에 올려둔 낡은 지구본이 어둠 속에서 저 스스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바지런히 돌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흐름이 점점 늘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탁 멈추어섰다. 이내 미세하게 달각달각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저 작은 지구는 적도를 따라 금이 가고 있었다. 머지않아 바다도 땅도 갈라서고 말았다. 그 틈새를 비집고 작은 깃털이 뵈었다. 깃털인지- 솜털인지, 어쩌면 그저 먼짓덩어리일지도 모르는 그것이, 천지를 열어젖히며 육신을 이끌고 기어나왔다.
새였다. 제 몸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날개를 가진 새가, 지구본의 깨진 단면을 횃대삼아 발톱으로 단단히 휘어잡고 섰다. 방금 태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용맹한 자태로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섰다.
그는 결심한 듯 가슴을 부풀리고, 양측 날갯죽지를 있는 힘껏 팽팽하게 펼친다. 곧 차근차근, 날개 끝자락부터 부드럽게 접으며 날아올랐다.
어둠 속에서도 달빛을 받아 빛나는 새는 이내 비행에 익숙해져 새벽의 창공으로 몸을 내던져 날아친다. 그는 내게서 멀어져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저 수많은 별 중의 하나로 밤하늘에 보석처럼 박인다.
언젠가 내가 말했네.
밤 하늘에 반짝이는 빛은 수억년 전부터 달려온 빛이 드디어 우리의 시야에 닿은 거라는 걸 알고 있니?
나는 지금 대답하네.
그렇다면 너라는 빛은 이제 얼마나 빛나야 겨우 이 지구에 다시금 닿을 수 있는걸까.
슬슬 여명도 지고 동이 트기 시작했다. 별은 저 서쪽 지평 너머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별빛들이 회광반조하듯 은은한 빛을 발할 즈음에서야 나는 겨우 나를 얽매던 감각에서 깰 수 있었다.
오늘 밤도 부디 맑기를 바랐다. 아니,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 눈에 보이건 말건 해는 다시 지고 별은 다시 밤하늘을 수놓을 것이라는 그 당연한 법칙이, 나에게 전에없던 안온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