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바라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갠지스강으로 유명한 곳이다. 힌두교도들은 갠지스강 물로 목욕을 하면 모든 죄를 면할 수 있다 믿는다. 또, 죽은 뒤 재가 이 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런 까닭에 갠지스강은 1년 365일 사람들로 붐빈다. 목욕하는 사람들과 곡소리를 내며 우는 사람들, 그리고 이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분위기를 감상하는 관광객들로.
당시 난 힌두교에 대해서도, 갠지스강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인도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관광지라는 것만큼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확실히 직접 가 본 바라나시는 그만의 오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목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씻어내고 있다는 생각에 다들 홀가분해 보였고, 물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죄를 녹여내느라 그랬는지 아주 더러웠다. 근처에 있는 화장터에서는 끊임없이 곡소리가 들리고, 장작더미에서는 불이 타닥거렸다. 화장터에서 나온 시체는 강에 뿌려졌고, 사람들은 그 물로 다시 목욕을 했다. 그런가 하면 동네에 사는 아이들은 강가로 나와 한가하게 크리켓이나 연날리기를 하며 웃어 젖혔다. 관광객들은 보트를 타고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며 갠지스강의 물살을 따라 흘렀다. 갠지스강은 누군가에겐 과거, 누군가에겐 미래, 또 누군가에겐 현재인 것 같았고, 그런 갠지스강의 분위기는 별생각 없이 바라나시로 향했던 나에게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을 뒤흔든 건 갠지스강보다는 그 너머의 세계였다. 화장터가 있는 강의 한편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반면, 강 너머는 마음먹으면 충분히 셀 수 있을 정도의 사람만 모래사장 위를 거닐 뿐이었다. 그 뒤로는 안개가 끝을 감춘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차를 마시다 문득 궁금해졌다. 강 너머엔 뭐가 있는지. 손을 쭉 뻗어 강 건너를 가리키며 찻집 주인에게 물었다.
“저기엔 뭐가 있는 거야?”
“별거 없어. 그냥 시골 마을.”
“마을? 저렇게 수풀이 우거진데?”
“응, 마을.”
“나 궁금한데, 가서 구경해봐도 될까?”
“아니, 가지 마. 위험하거든.”
“위험하다고? 뭐가?”
“거긴 불가촉천민이 사는 마을이야.”
불가촉천민. 카스트 제도의 가장 마지막에 있는 계층.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을 4개의 계급으로 나누어 놓은 그 불합리한 카스트 제도에조차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래서 접촉할 수 없는 천민이란 뜻으로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인도에서 그들은 주로 청소, 세탁, 도축 등의 힘든 일을 담당하며, 다른 직업을 가질 기회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해 온 일을 그 자손들도 물려받기 때문에 신분 상승도 어렵다.
실제 불가촉천민인 저자가 쓴 책, ‘신도 버린 사람들’에서는 불가촉천민을 이렇게 묘사한다.
“우리는 우리의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해 허리춤에 빗자루를 매달고 다녀야 합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실 수도 없습니다. 사원에 들어가 신께 기도드릴 수도 없습니다. 신성한 곳이 더럽혀진다는 이유로 그곳에 그림자도 드리울 수 없습니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권리는 오직 하나, 구걸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우리가 천하게 태어난 것은 전생에 지은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와 닿는 것만으로도 오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은 불가촉천민(달리트)입니다.”
아이러니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강에 와서 죄를 씻어내는데, 그런 구원의 강 너머에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게. 갠지스강이 더는 성스러운 강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것으로부터 불가촉천민을 고립시키는, 인간다운 삶을 앗아가는 강처럼 보였다.
아까보다 훨씬 미워 보이는 강을 바라보며 불가촉천민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매일 아침, 해도 다 뜨지 않은 새벽부터 그들은 강을 건넌다. 그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잠든 시간 다시 강을 건너 어둠이 잠식한 숲으로 모습을 감춘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반복한다. 그들의 아버지도 그랬고, 할아버지도 그랬다. 그들의 아이도, 또 그 아이의 아이도 그렇게 할 것이다. 강을 건너고, 또 건너는 삶이 그들의 세계이다. 다른 무엇이 된다는 것도, 다른 삶을 살아본다는 것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강을 건너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그들에겐 존재하지 않는 삶이니까.
여기까지 생각하니 무기력하게 슬퍼졌다.
어린 시절의 난 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의사도 되고 싶었고, 유치원 선생님도 되고 싶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수가 되어 유명하게 살면 어떨지를 상상하며 유명한 삶에 대한 피로도를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내겐 꿈꿀 수 있는 사치가 있었다. 꿈의 실현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지만, 적어도 꿈에서라면 난 내가 원하는 누구도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저들에게는 꿈꿀 자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꿈은 가능성을 기반으로 한 달콤한 몽상보다는 쓰디쓴 현실 부정에 가깝다. 무엇을 꿈꾼다 한들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는 삶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내 부끄러워졌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난 왜 그 무엇도 되려고 하지 않은 채 이렇게 살고 있나 싶었다. 이따금 비눗방울처럼 불규칙하게 떠오르곤 했던 꿈들과 그 꿈들을 외면했던 이유를 하나둘 곱씹어봤다. 이제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너무 거창한 꿈이어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서, 비현실적이어서 등등… 끝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이유 중 하나도 타당한 게 없었다. 이쯤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비겁했다고. 실패해도 수 없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무수한 기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두려움 뒤로 몸을 숨겼다고.
그래서 난 지금 글을 쓰고,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그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지금 꾸는 이 꿈도 이 전에 내가 거쳤던 다른 수많은 꿈처럼 막상 해보니 내 길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겐 그때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담아 써본다.
- 나에게 복잡한 기분을 안겼던 갠지스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