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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인재 Aug 29. 2020

공인된 국가채권추심업자

  사업을 하시는 회장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오셨다.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사람을 고소하기 위함이었다. 그 사람은 할아버지 회사가 종합면허를 따면 더 큰 사업에 참여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면허를 따는 것은 절차도 복잡하고 해서 손이 많이 가니 면허를 갖고 있는 회사를 사자고 이야기했고, 할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2000만 원의 거금을 주면서 회사를 사달라고 했나보다. 

  돈을 전달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할아버지는 면허를 갖춘 회사를 살 수 없었고, 그 사이에 오히려 사업은 망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속적으로 그 사람을 만나고, 카톡 메시지를 보내고 하였지만 그 사람은 좋은 소식 갖고 올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결국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처럼 일은 진행되지 않았고, 돈을 주고 약 1년이 지난 후 그 사람을 사기죄로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온 것이었다.

  잘 알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왜 그 큰 돈을 주었느냐는 물음에 그 사람은 전문가이니 본인보다 더 잘 일처리를 잘할 것 같아 보여 믿었다고 한다. 나는 사업을 한 번도 해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할 것 같지 않지만 남이 내 회사를 위해 나처럼 노력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남은 남이고, 나만큼 내 회사를 생각하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따지기 시작하면 사업을 못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사업가는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그 사람에게 준 2000만 원을 다시 받을 수 있으면 고소를 취하할 수도 있다고 조사과정 중에 말씀하셨다. 초임 수사관인 나는 이 말에 격분했다. “아니 그럼 민사소송을 제기하셔야지, 왜 국가공권력을 이용해서 돈 받아달라고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사소송은 나쁜 사람들을 잡기 위해 국가가 설계한 강력한 제도여서 그 운용은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배웠다. 내가 준 돈을 다시 받고 싶어서 무분별하게 이용되어서는 안 되는 제도가 바로 형사제도이다. 

  경찰서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이 내가 빌려준 돈을 갚고 있지 않고 있으니 경찰이 대신 연락 좀 해서 돈 좀 갚으라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요구한다. 원칙적으로 경찰은 사기범을 수사해서 구속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공권력이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민원성 부탁을 거절해야 한다. 경찰은 채권추심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찰이 돈을 받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빌려간 돈을 갚으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 경찰이 이런 것도 처리 안 해주냐”, “진짜 나쁜 악질 사기범을 왜 안 잡으려고 하는거냐?”와 같은 고성이 터져 나와 경찰관도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그 사람은 할아버지가 경찰에 고소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할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서 2000만 원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할아버지는 며칠 후 고소를 취하했다. 나는 사건을 증거불충분으로 검찰에 넘겨 하나의 사건을 빠르게 내 사건 목록에서 지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형사사법시스템이 채권추심시스템으로 전락하고 있는 모습을 직접 목도해서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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