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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May 25. 2020

삶에서 과거의 여행을 마주할 때

청춘여행소, 스물네 번째 이야기

꼭 4년 만이다.  

여행 중 있었던 일, 느꼈던 것을 모아 글을 쓰기로 했지만 삶이 바쁘다는 이유로, 달려야 한다는 이유로 잊고 있었다. 요즘 들어 예전 여행이 종종 떠오른다. 지금의 삶이 팍팍하다 느껴져서일까 아니면,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리워서일까. 희미해진 이전의 여행들, 그 여행을 하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4년 동안 대학을 졸업을 했고, 전공을 두 차례 바꿔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찾아오는 큰 변화들에 적응하다 보니 혼자 사색하며 쉬어가는 여행이 멀게 느껴졌다. 마음의 여유 없이 앞에 닥친 일에 허덕이다 보니 이런 여행이 그저 젊은 학생 때 가능한 여행일 뿐이었나 반문하곤 했다. 그러던 중 내게 유산이라는 아픔이 찾아왔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슬픔은 어느 것도 할 수 없도록 몸과 마음을 붙잡았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각도 많아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큰 슬픔 속에 있던 나는 이 일이 마치 내게 잠깐 멈추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이전에는 내가 떠나야 할 때를 먼저 알고, 여행을 결심하고, 떠나고, 여행에서 다시 삶으로 돌아갈 힘과 에너지를 얻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희미 해저 버린 기억 속에 그 당시 여행 속에 느꼈던 여유가 어땠는지 조차 잘 생각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여행 중 썼던 일기들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2014년 1월 8일 (목) 
피렌체 중앙역.  
아빠가 딸 두 명을 양손에 잡고 간다. 엄마는 뒤에서 유모차를 끌고 간다.
아빠는 큰 가방을 뒤에 메고 있는데 가방 양쪽에 딸의 곰인형 두 개가 나란히 묶여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내게 부모가 된다는 것이 멀게 느껴진다. 그때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 질문인 듯)
때가 되면 자연스레 찾아올 일들이지만 저 가족의 모습처럼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하려면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데… 지금의 이 여행도 소중하게, 그리고 앞으로 겪는 모든 일들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싶다.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여행 중 생각하고 느끼던 것들이 내게 힘이 되고, 때로는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여행길에 만나 나눈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내 삶에서 떠올리고 있고, 그때 먹었던 음식의 레시피를 떠올려 요리하기도 하고, 소중했던 여행 장소를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불안할 때마다 여행길에 만난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들의 생각과 여유로움을 다시 기억한다. 우리는 모두 답이 없는 인생을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다. 


산티아고 길을 걷던 중 꼭 하고 싶은 일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친구들이 여행이 주는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삶을 여행하듯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여행이 어떻게 가능한지, 무엇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 얼마 전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지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들이 연결되어 짠하고 어느 순간 퍼즐 조각처럼 맞춰질 것 같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지만 과거 여행 중 내 생각과 다짐이 내가 인생에서 큰 결정을 할 때마다 영향을 주고 있었다. 여행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듯 내 인생도 내 뜻대로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행을 삶으로 가져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거의 여행이 지금 내 삶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니! 


과거 나의 모든 여행의 생각과 경험이 지금의 나를 응원해주고 붙들어주니 참 고마웠다.  

생각해보니 여유라는 것도 여행을 떠나야만 주어지는 게 아니었다. 삶을 여행하듯 산다는 건 익숙한 삶에서도 새로움을 찾고 당연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며, 언젠가는 떠날 이곳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니까. 


(삶으로의 여행이란) 여행과 삶이 하나가 돼 삶 전체를 여행으로 보고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삶 전체가 여행이기에 여행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도 여행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평생 자기 길을 찾고 자기 세계를 만들어간다.
- <여행하는 인간> 중에서 




함께 나누고픈 여행 이야기나 성장여행을 위한 아이디어, 조언이 있으시다면

청춘여행소 dreamingtraveler2016@gmail.com 으로 보내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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