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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여성의 롤모델 찾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혹은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대답은 혼자 살때는 좀더 간단했다.

20년 전 대학생일 때는, 해외 혹은 multi-cultural company에서 일하며, 마케팅 분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중국과 미국에서 업무 경험, 이렇게 적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특히 아이가 생기자 그 대답은 굉장히 어려워졌다. 나의 딸은 (엄마를 닮아) 굉장히 예민하고 작은 일도 세세하게 기억했으며, 일하는 엄마라 그런지 엄마를 항상 필요로 했다. 주말에 좀 쉬고 싶어도 아이가 화장실 갈때도 내가 옆에 있기를 원하고, 모든 사소한 일들도 자기와 함께 하기를 원했기에, 일하는 것이 집에서 가족과 있는 것보다 훨씬 쉬웠달까..자기에 대한 확신, 자기 긍정감 같은 것을 키워주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엄마 없이 매일 친구집에 다니고, 키워주시는 이모님도 엄마처럼 아이를 받아주고 사랑해줄수 있는 것은 아니니 다른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나 언행에도 쉽게 신경쓰고 마음이 상해하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그나마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로 아이의 욕구를 조금은 충족시켜줄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안방에서 문을 닫고 일하고, 아이는 하원 후 거실에서 이모님과 놀지만, 이모님이 봐주시더라도 잠깐 짬을 내서 엄마에게 와서 안길 수 있고, 이모님도 엄마가 있으니 더 눈치를 보신달까? 아이와도 더 재미있게 놀아주시는것 같아 최대한 재택근무를 하곤 했다. 내게는 사실 재택근무보다는 나가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하는 게 더 에너지도 생기고 즐거웠지만, 아이의 인성 형성에 중요하다는 5~7세 시기에 최대한 아이도 챙기고 일도 할수 있는 좋은 찬스이니 놓칠수 없었다. 물론 꼭 필요한 경우나 일이 바쁜 주에는 매일 출근하기도 했는데, 이럴때는 꼭 집에 돌아오면 아이 기분도 별로고 예민해져 있는 등, 아이 상태가 별로였다.


또 한가지 재택근무의 장점은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교류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직장에서도 조금 쉴수 있는 시간들이 있는데, 그동안에 그런 여유 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면,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거나, 아이 친구들을 집에 초청해서 놀리거나 할수 있었다. 엄마들간의 뭔가 암묵적인 룰(?) 같은 것을 느낀게 있다면, 내가 우리 집에 아이들을 데려와서 놀리면 품앗이처럼 다음에는 다른 친구집에서 초청해서 놀리고, 하는 것이었다. 내 아이도 이제 6세로 socializing 을 배우는 나이라 친구집에 가서 놀고 싶고 친구들을 초청하고 싶어하는데, 엄마가 없으니 그게 잘 안되었던 것이다. 매번 감사하다고 문자 보내며 친구집에 혼자 가서 놀게 하다가 나도 품앗이를 한번 해줄수 있게 되니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렇게 재택근무의 장점을 최대한 뽑아먹다(?) 보니, 이제 백신 접종율이 좀더 높아지고 ‘with corona’ 선언을 해서 재택근무를 그만해야하게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하는 고민을 하게되었다. 그리고 최근  커뮤니티 글이나 언니들의 경험담을 통해 늘어난 하나의 걱정거리가  있는데, 바로 ‘워킹맘은 전업맘 사이에서 따돌림 받는다, 정보 공유를 안해주고 학원을 팀짜서 보내곤 하는 그룹에서 아이가 소외되게 된다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다행히도 아이 친구 엄마들이 정보도 공유해주고 팀에도 끼워주곤 하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는(?) 초딩이 되면 그마저 공유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표현인것 같고, 실제로 주위 엄마들을 경험해 본 결과 드라마처럼 일부러 따돌림시킨다기 보다는, 내 생각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세심하게 아이와 주위 친구들을 케어하기 어려운 워킹맘들은 자연스럽게 그룹에서 소외가 되는 상황이 맞을것 같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고, 팀을 짜는데 꼭 들어가야하는가, 엄마 주도로 친구를 만들어줘야하는가에 대한 내 생각은 당연히 NO이지만, 아이를 키우며 느낀것이 그게 그렇게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므로, 걱정은 걱정이다. 벌써부터 유치원 다니는 다른 친구들이 어디가서 뭐하고 놀았는지 알고, 자기도 같이 하고 싶어하고, 친구들도 불러서 리드하고 싶어하는 성격의 아이인데, 좀더 크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지 않을까.


그러면 회사를 관둬야하나? 하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나누니 남편은 나름 일리있는 조언을 해주었다.

“근데 니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그 엄마들처럼 열혈맘으로 다니면서 네트워킹하고, 팀 짜고, 학원알아보고, 할것 같지는 않아..”

마…맞는 말이긴 하다. 근 10년의 결혼생활이 헛되진 않았구나..ㅎㅎ


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삶을 살아야할까? 회사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100% 풀파워로 목표를 세우고 그걸 달성할것도 아니고, 집에서도 딱히 아이를 잘키우는 것만을 목표로 삼고 열혈맘으로 살것도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주위에 좀 있지만, 나와는 상황이 달랐다. 친정/시댁 부모님들이 평일에 아이를 다 케어해주시는 경우가 많았고, 직접 아이를 보는 경우 특수 직종이었다. 회사에 매여있을 필요가 없어 거의 재택을 할 수 있거나, 업무가 주로 혼자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인 경우가 많았다. 나의 경우 양가 부모님은 몸이 좋지 않으시거나 ‘너희 애는 너희가 책임져라’는 철학을 갖고계시기에, 나의 업무는 나혼자가 아니라 매일 미팅과 토론을 필요로 하고 사무실에 붙어있어야 하는 일반 사무직이어서, 혼자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보아야 한다.


여러가지 고민을 하던 중, 워킹맘이면서 초등학생 아이를 두고 있는 지인이,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일하는 엄마를 더 멋있어 한다’라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내게 전달해주셨다. 그 말이 나의 아이에게도 적용되면 좋겠다. ㅎㅎ


매체에서 접하는 워킹맘 중 가장 열혈 워킹맘은 박지윤 아나운서이다. 자기 쇼핑몰도 있고, 프리로 방송도 하며, 아이들은 제주 국제학교에 보내는것 같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데 확실한 자기주관도 있는 것 같다. 댓글로 아이들 인스턴트 먹이고 뭐 이런 비판이 있었는데 그걸 반박하고 엄마도 엄마의 삶이 있다라는 글을 올렸던 것을 본적이 있다. 하지만 내가 따라하기에 그녀의 경제적 여유나 소득 수준, 체력 등이 넘사벽이라 그냥 인스타 팔로우만 하며 쳐다만 볼 뿐이다. 나는 그런 유명인도 아니고, 체력, 정신적 여력도 그녀에게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글을 쓴 목적으로 돌아오면, 곧 40대를 마주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다. 10대, 20대도 아니고 40대를 앞두고 이런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이 어쩌면 부끄럽고 놀랍기도 하지만, 삶의 스테이지나 환경이 달라지면 내 삶의 목적도 다시 설정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일은 그냥 부가적인 것일 뿐, 그냥 돈벌이 수단이라고만 생각하고 대충 다니고 아이 키우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에 좀더 신경쓰라는 것이다. 일에서도 B, 가정에서도 B학점 정도하면 꽤 괜찮은 인생 아니냐고. 둘다 하는 것이 체력적/정신적으로 힘들므로 내경우. A는 불가능했고, 사실 최대한 노력해도 B학점이 나올까 말까한 상황인데, 문제는 여기에서 내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데에 있었다. 그래서 목적을 좀더 명확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일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나의 일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2. 아이를 키우며, 가정을 꾸리며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가정을 통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1. 에 대해 고민해보자면, 일을 그만둔 친구들은 ‘집에만 있으니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라고 많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일을 해야 꼭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 없이 학생일 때도 나의 존재는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일을 하지 않고 육아나 가정에 충실하겠다는 목적을 가진 ‘나’도 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경우 어떤 사람이 되고싶어서, 혹은 어떤 니즈로 인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우선 이 일을 통해 내 스스로가 성장하고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좋았다. 매니저로서 팀원들을 성장시키고 팀을 꾸려나가는 업무가 가정/아이를 성장시키고 꾸려나가는 업무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는데, 지금 회사에서는 관련 교육을 많이 시켜주고 그 교육이 가정에도 적용될수 있을 정도로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두번째 역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 속에서 내가 배울것들을 많이 발견한다는 점이 좋다. 하나의 타이틀만 가지고 있다면 만나는 사람의 범위나 종류도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일에서는 특히 마케팅 업무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이나 다양한 분야에 대해 직접 부딪히며 배울 수 있다.


결국 많은 사람, 새로운 것들을 만나고 배워서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내가 가진 일의 목적인것 같다.


그렇다면 2.에서는 어떨까?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꾸리는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보람차고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팀원들에 비해(?) 내가 이 한명의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범위가 훨씬 크다. 엄마는 어린 아이에게는 완전히 신과 같은 존재이므로. 그렇다보니 책임감이 큰 만큼 더 깊게 인볼브/인게이지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서 오는 사랑의 힘도 굉장히 큰 안정감과 만족감을 준다.


가정을 잘 꾸린다는 것은 내게는 남편과 솔직하고 애정어린 의사소통을 하고, 아이에게 더 세심한 신경을 써주고, 매끼 먹을 신선한 음식을 만들고,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매일 청소와 정리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써놓고 보니 별거 아닌것 같은데, 이 부분이 사실 매일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다. 재택근무를 하려고 앉으면 주위가 지저분해서 일이 들어오지 않고, 밥을 하려고 보면 (최대한 음식은 사먹지 않고 해먹으려고 한다) 재료가 없거나 냉장고의 재료들은 다 상해있고, 결국 해먹는 음식의 종류는 5개 미만으로 같다보니 아이에게 다양한 음식을 주지 못해 편식을 유발하는 것 같고, 이런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남편에게 당신은 왜 집안일을 이렇게 못도와주냐며 싫은 소리만 하게되다보니 남편과의 애정어린 의사소통은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청소이모님도 일주일에 한번씩 오시고, 반찬을 사먹기도 하고, 샤이모님이라는 샤오미 로봇청소기도 쓰고 있지만 현재 아웃소싱 수준으로는 매일매일 쌓이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벅차다.


2에서 나는, 사실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엄마처럼 나의 아이를 교육하고, 엄마처럼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고, 우리 엄마가 롤모델인데 엄마는 전업주부였던것, 이것이 나의 가장 큰 딜레마인것 같다. 왜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생각해본적 없는데 자동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 걸 보면 보고배우는 가정교육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 라는 걸 깨닫게 된다.


왜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잘 꾸리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걸까? 이제와서 새삼 생각해보면 가정과 아이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였나, 아무리 일에서 성공해도 가정이 평안해야 한다고 했다. 행복한 가족을 만드는 일, 그것을 위한 정돈된 매일매일의 집과 삶, 여기에서 마음의 안정이 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쓴말을 정리해보면, 나라는 존재의 안정감, 시작점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 2. 그걸 바탕으로  새롭고 나은 내가 될수 있는 것이 1. 연결될  있겠다. 그렇다면 중요도는 2>1 순이고, 1때문에 2 흔들리게 된다면 1 그만두는 것이 맞으므로, 많은 워킹맘들이 어느 순간 일을 그만두게되는 것일테다. 나도 몸이, 마음이 힘들때마다 종종 떠올리게 되고. 그럼 다음에는 1.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어떻게 되살릴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아야겠다.


오늘의 감사: 추석 이후 다녀온 여행에서 몸이 아파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아이는 행복했던 것.

오늘의 해야할일: 추석 이후 바쁜 일정이었는데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비우게 되어 회사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다정한 동료가 되자.

오늘의 하지말아야할일: 나도 몸이 좋지 않고, 아이도 오랫만에 가는 유치원이라 힘들테니 아이를 재촉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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