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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스스로 자라게 하려면

이적 어머니, 박혜란 작가의 유퀴즈 출연 컨텐츠가 자꾸 알고리즘에 등장해서 들어보았는데, 화면과 목소리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 엄마인줄 알았을 것 같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 때 내가 100점을 맞아왔을때, 다른 아이들은 90점만 맞아도 부모님이 이것저것 사준다는데 나는 100점인데 왜 안사줘? 라고 물었을 때 엄마가 했던 말이다. 엄마는 그때 바닥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큰 신문(옛날 신문은 사이즈가 더 컸다.) 의 다음 장을 펄럭 넘기면서, “공부 너 좋으라고 하는거지 나 좋으라고 하는거냐?”라고 하셨다. 그 날의 그 장면이 꽤나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엄마의 그 말이 내게 준 임팩트가 꽤 커서였던 것 같다.


엄마는 워킹맘이 아니었는데도, 혼자 심리학 강의도 듣고 교육학 강의도 들으시면서 자신만의 교육철학을 세우고, 아이들을 그렇게 ‘대충’ 키웠다. 나도, 동생도, 크게 사교육을 많이 하지 않고 학교공부만 충실히 하면서 나도 동생도 이름을 들어본 대학에 들어갈수 있었다.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꽤 올바른 마음가짐과, 시류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 단단함을 가지고, 퍽 깊은 사고를 할 줄 아는 성인으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늘 우리는 엄마에게 “우리는 비용대비 효율이 좋은 자식들이다, 엄마 돈도 크게 안쓰고 자랐으니까”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때 엄마는 “그렇게 키우는 게 쉬운 줄 아니? 더 어려운 거야.”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래서 인생과 육아에 있어 나의 멘토는 늘 우리 엄마이다. 딸을 키우면서도 맞닥뜨리는 일들에 대해 늘 엄마에게 전화해서 상담하는데, 엄마에게 상담하면 늘 만족스럽다.


얼마전에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읽기 레벨 C로 올라갔다고 좋아했던 일이 있었다. 반 아이들 중 공부를 잘한다고 인정받는 친구 누구도 레벨 C인데 자기도 이제 C가 되었다며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던지, 너무 귀여웠다. 마침 며칠 후 할로윈 파티가 있어 친구 엄마들을 만나 뿌듯하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럴 수가, 공부 잘해서 레벨 C라던 친구는 이제 D라는 것이 아닌가!!! 아이가 실망할 것 같아서, 딸에겐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대신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이런 일이 있었는데 (미주알고주알) 걔는 유치원 숙제도 엄청 꼬박꼬박하고 (나는 아이가 하기 싫다고 징징대면 니 숙제니 니가 하기싫으면 하지마라고 해서, 안해가는 날도 많았다.;;), 한글도 매일 학습지를 해서 글씨도 어른이 쓴것 처럼 또박또박 잘써, 그리고 다른 아이는 벌써 사고력 수학 학원을 시작했대! 우리 딸도 시켜야할까?”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랬어. 너도 너희 딸도 12월 생이라서 어차피 더 먼저 태어난 아이들 수준으로 가려면 시간이 걸리는 거야. 그 차이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니 다 따라 잡아지더라.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게 중요해. 그리고, 너희 딸이 친구를 따라 잡았다고 좋아하는 그 기쁨이 중요해. 점점 자기가 하면 할수록 된다는 사실을 느낄 때 공부에도 재미가 붙는 거야. 어릴 땐 좀 못하는게 더 좋아. 지금 잘하면 나중에는 내려가는 길밖에 없거든. 차라리 지금 못하고 점점 잘하게 되면서 거기서 기쁨을 느끼는 게 낫지.”


또 이렇게도 말했다. “중학교 때까지 엄마가 사교육으로 엄청 시켜서 전교 1,2등 하던 애들은 고등학교 가니 다 성적 떨어지더라. 인생이라는 마라톤에서 대학 들어갈때까지 십 몇년을 같은 스퍼트로 달릴수는 없는 거야. 달려야 할때, 고등학교 때 달릴 수 있도록 어릴 때는 숨고르기를 해두는 게 좋아.”


물론 그게 나의 케이스에만 적용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도 그런 경험을 했기에 엄마의 말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막상 내 눈앞의 아이가 친구보다 뒤쳐지는 것 같을 때, 요즘 입시는 예전과는 달라서 어릴 때부터 ‘기획’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아이를 믿고 그냥 혼자 깨닫고 열심히 할 때까지 ‘내버려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엄마가 말했듯 그렇게 ‘대충’ 키우는 게 어떻게 보면 속은 문드러지고, 진심으로 아이가 잘할거라고 ‘믿어주는’ 것이 필요한 더 고난이도의 일인 것이다.


장기적으로 어른이 된 후를 생각하면 아이가 스스로 자라게 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나의 경우, 내가 가고 싶은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 업무를 내가 결정했다. 내 인생의 방향을 내 스스로 고민하고 정했기에, 대학 생활도 즐거웠고, 일도 재밌게 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대학을 나온 나의 남편은, 부모님이 정해준 대학, 남들이 좋다고 해서 결정한 회사를 다니는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인생의 방향성을 좀 더 생각하고 고민했어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이른 은퇴를 꿈꾸는 파이어족이 되겠다고 한다. 나는 일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남편은 일은 일일 뿐, 일이 즐거울 수는 없다라는 주의여서 굉장히 신기했었는데, 어쩌면 본인이 얼마나 자발적으로 그 길을 결정했는가가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미래의 세상에서 국어 100점, 영어 100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웬만한 일은 다 컴퓨터가 대신 해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한다고 요즘의 엄마들이 매진하는 것이 사고력 수학, 코딩 학원, 혹은 토론 학원 등인데, 그 학원들이 과연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수 있을까? 아직 보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아닐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스스로 자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학원 선생님보다는 부모가 더 잘할 수 있는 고민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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