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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당신은 어떻게 변하셨나요?

“지난 5년, Evie님은 어떻게 변하셨나요?”

얼마 전 도착한 이메일의 제목이었다. 제목만 보고 갑자기 한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앞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최근 5년은 나에게 있어 굉장히 롤러코스터같은 기간이었다. Life-changing experience가 일과 삶에서 모두 일어났으니 말이다.

1. 삶: 아이가 생겨나고, 엄마가 된 것.

2. 일: 마케팅은 변함없지만, 회사가 바뀌었고, 판매하는 것이 바뀌었다.

3. 외부환경: (망할놈의) 코로나


우선 1번에 대해. 삶에서는 평생 나만 알고 살던 내가 처음으로 나를 희생해서 보살피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생겼다. 처음 1~2년 동안은 아이를 ‘키워내느라’ 그리고 처음 부모 노릇이라는 걸 해보느라 정말 힘들었고, 뭘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반응해주고 어떻게 사랑해주어야 하는지 몰라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하나의 직업/신분 같아서, 많이 배우고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나의 아이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배우고 거기에 맞게 아이를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 딸이라는 한 명의 새로운 인간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고 적응하느라 지난 5~6년이 훌쩍 지났다고,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겠다.


하지만 동시에, 내 아이라는 어찌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하고 적응하면서 나도 어른으로서 한뼘 (어쩌면 그 이상?ㅎㅎ) 성장했다.

회사에서도 다른 모임에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해 좀더 생각해보고 배려할 수 있게 되었고, 작은 업무에 집착하거나 멘트 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여러 관점에서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달까?


마치, 아이가 처음 이상한 벌레를 발견해서 어쩔줄 몰라 무서워하면 내가 가서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벌레라는 건데, 귀엽고 재미있는 거야. 한번 관찰해볼까? 라고 말해주는 존재가 되었는데, 그 존재가 나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말해주는 느낌이다. 내 삶에서 오늘 일어난 이 일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세히 뜯어보면 재미있는 것이거나, 아니면 별것 아닌 일일 뿐이라고 말이다. 덕분에 일이나 어떤 사건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줄었고, 조금 더 안정적이고 심지가 굳은 사람이 될수 있었던것 같다.


두번째로, 일에서는 10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잠깐이었지만 스타트업 경험도 해보고, 또 다른 새로운 직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일과 삶을 좀더 분리해서 생각할수 있게 됐다고 썼지만 그건 좀 더 매일매일의 직장 생활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멘탈에 대한 이야기에 보다 가깝고,

아무래도 맑은 정신(?)으로 보내는 시간의 대다수를 일을 하며 지내기에, 거시적으로 보면 일이 내 삶이나 내 관심사에 주는 영향은 꽤 크다.


이전 직장에서 자동차 브랜드 마케팅을 담당하다보니, 예전에는 지나가는 자동차에, 그 디자인에, 새로운 기능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많이 갔고,

관련 업계 동향이나 글로벌 업계 동향도 조금 더 테크놀로지 쪽으로 자연스레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고, 찾아보는 글이나 기사도 그런 쪽이 더 많았다.


잠깐의 스타트업 경험을 거쳐 정착한 세번째 회사는 글로벌 홈퍼니싱 회사이다. 그런데 이 회사, 너무 특이하고 재미있다.

이 회사에 다니다 보니 신기하게도 제품(=가구,소품)의 디자인이나 기능이 아니라 삶에 대해,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그에 대한 나의 의견은 어떤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활동이 내 삶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매년 한가지의 주제에 대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는데, 작년 우리 회사의 마케팅 테마는 sustainability였다.  

요즘 green washing이라고 해서 지속가능성을 마케팅용으로만 활용하고 실제로는 결국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회사들이 많이 이슈가 되는데, 우리 회사는 진정으로 sustainable한 방식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회사 직원들도 계속 질문을 던져서 자기 검열을 하곤 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물도 빗물을 받아서, 전기는 태양열 전기로 많은 부분을 충당한다던지, 실제로 만드는 제품들이 다 지속가능한 소재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던지 등. 하여 마케팅을 할때도 이 활동이 더 쓰레기만 양산해 내는 것은 아닌지 내부적으로 챌린지하고 고민하고 어떤 게 진정 지속가능한 삶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지속가능성을 왜 추구해야하는지에 대한 자료들을 보면서는 내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어떠할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이고 현실감있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좀더 책임있는 소비를 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기도 했다. 마케팅 활동을 하며 알게 된 샴푸바, 린스바 등 플라스틱 없는 제품도 써보았는데, 굉장히 만족감이 높아서 앞으로도 쭉 사용할 예정이고, 다른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행동들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Life at home이다. 우리는 가구를 팔지만, 실제로 파는 것은 ‘집에서의 행복한 삶’이다.

행복의 정의가 사람마다 다르다보니, 집에서의 행복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것에 행복해하는 사람인가에 달려있게 되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하여 올해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집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나는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우리 가족/구성원들은 어떤 사람인지’, ‘그들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만의 삶이 아니라 한국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계속 조사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런 다양한 삶의 형태를 실제 컨텐츠로, 실제 룸셋으로 구현하여 접하니 더욱 생생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아, 잠깐 샛길로 샜는데, 그래서 5년 동안 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덕분에 세상의 거시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변화에도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라는 이야기였다.


세번째, 코로나에 대해서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다. 언제 없어질지, 마스크를 벗는 세상이 오긴 오는건지, 마스크 안쓰면 큰일나는 줄 아는 아이를 보면 새삼 슬퍼질 뿐이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를 많이 하면서 집의 소중함이나, 청소, 요리, 빨래 등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즐거워진 것은 큰 변화이다. 밖에 나가 음식을 사먹는 것이 위험부담으로 다가오니, 그리고 아이를 위해 신선한 재료로 직접 해먹는 음식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니, 요리를 조금 더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 알게 되었다. 청소와 빨래도 마찬가지이다. 위생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면서 그리고 매일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내 공간과 내 집을 더 예쁘게 만들고 깨끗하게 만들고 싶어졌다. 매일 머무는 곳이 예뻐지니 더 기분도 좋아지기도 했다. 요즘은 부지런히 꽃도 사고 식물도 들여놓으면서 집을 조금 더 생기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즐거워졌다.


또, 코로나로 인해 해외 출장이 다 중단되고,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도 많이 늘어났다. 물론 집에서 미팅과 업무는 하루종일 계속되고 야근도 더 많이 하게 되었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건너방에 엄마가 있고, 언제든 문을 열면 만날 수 있다’라는 게 굉장히 큰 의지가 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중요한 시기 아이의 정서 안정에도 좀더 도움이 된것 같다.


5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 어떻게 보면 그대로인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많은 성장과 변화가 있었다. 몇가지 후회되는 부분들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폭풍과 같은 나날들을 열심히 살아내 왔기에, 지금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그때는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것이라고, 늘 나는 그때의 나를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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