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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밥 Jan 27. 2022

나는 츄리닝을 입는다

레깅스 입는거 나도 좋아하지만

'문이 열리네요 그녀가 들어오죠' 첫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보다 눈에 들어온 건 그래도 겨울인데 하체라인이 부각되는 레깅스 차림의 두 여성이었다. 카페 옆에 필라테스학원이 있었던가?


아무리 늦잠을 잤어도 단골 카페 출근은 웬만해선 빼먹지 않는다. 주 3회는 무조건 가기 때문에 여기가 내 사무실이다 생각하고 편안하게 오전 시간을 쓰고 온다.


보통 친구가 커피데이트 신청을 하면 집 앞 무인카페를 가는 한이 있어도 옷을 대충 입는 법이 없었다. 화장까진 아니어도 집에서 뒹굴다 나온 티를 내지 않는게 우리 살림 생활자들의 룰이라면 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 그 마음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레깅스 여성들은 누가 봐도 시선이 갈 만했다. 그녀들이 큐알 코드를 찍는 걸 보고 '아, 카페에서 마시고 가려나 보군'. 내가 입고 나온 편안한 옷차림을 다시 훑었다. 오늘따라 그레이에 꽂혀서 위아래 가장 편안한, 무릎이 나올 수도 있을 만한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왔지 뭔가.' 나 눈곱은 뗐겠지? 양치를 했던가? 세럼 스틱이라도 바르고 나올걸 너무 생얼이네' 그녀들의 빛나는 레깅스 차림에 비해 내 옷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와 대각선 테이블에 자리 잡은 그녀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책을 펼쳐놓고 부스스한 차림의 아줌마가 혼자 아침부터 앉아 있는 게 그녀들도 신기한 모양인지 안 본 척 힐끔거리는 게 내 옆눈으로 포착되었다. 그래, 뭐 좀 더 있어 보이는 걸 하나 해보자.


테이블에 널브러졌던 블루투스 키보드에 핸드폰을 올리고 블로그 앱을 열었다.

'잘 봐~ 너희는 수다 떨러 왔지? 난 책읽으러  왔어.' (유치하다 정말)


역시나 수다 때문에 귀에 바늘 찔리는 것처럼 따갑다. 어제 마친 합평 에세이 후기를 쓰기 시작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아침 부터 카페 와서 시간만 축내는게 아니란 걸 보여주려는 있어빌리티 정신을 발휘하고 싶어졌다.  핸드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키고 오른손은 가끔 무심하게  커피잔을 들어 입에 댔다 뗐다만 반복하면 되었다. 무척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듯.


몸 좋은 그녀들이 입은 레깅스 패션이 민망하긴 했어도 부럽긴 하더라. 집으로 오는 길 동네에 하나 있는 보세 옷가게 유리창을 기웃거렸다. '음, 저 베이지색 원피스에 조끼 걸친거 내 스타일인데? 어디보자, 와이드 청바지 색깔 잘 나왔네.'


오늘도 인터넷 아이쇼핑 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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