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유일한 낙이 있다면 오전 한두 시간 동네 단골 카페 가는 일이다. 커피값도 만만치 않아 매일 가는 건 부담이지만 집안일을 미뤄두고 잠시나마 휴식으로 카페만 한 곳이 없다.
카페 갈 때는 책 두 권, 블루투스 키보드를 챙겨 간다. 오늘도 역시나 카페라테를 시켰다. 고소한 원두 맛이 일품이다. 가장 구석진 곳 유리창 바로 앞 단골 자리에 앉아 커피가 준비될 동안 책을 놓고, 마스크를 벗는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 밖을 응시하며 숨을 고른다.
주말엔 거의 집에 있는데 처음 주말 오전 카페를 찾았다. 늘 앉던 자리가 다행히 비어 여유롭게 책을 읽었다. 두 시간만 있다가 가려고 몰입해서 책을 읽는데 가끔 만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이, 친구. 무슨 일로 주발에 전화를 다 했어?"
"너 아직도 글 쓰고 그러니? 너 책도 많이 읽잖아. 내가 누굴 좀 만났었는데 독서지도사라는 게 있대. 그 자격증 따서 애들 가르치는 일 하면 좋은데. 너 그거 해라. 돈 벌어야지. 애들도 다 커서 너 시간 많잖아. 맨날 카페 앉아 있지만 말고 자격증도 따고 일해. 재능도 있는데 왜 썩히냐."
친구는 느닷없이 전화해서 엄마인 줄 착각하게 할 만큼 잔소리인지 오지랖인지 구분 안 되는 말을 늘어놓았다. 내가 독서지도사에 대해 모르고 있을까 봐 알려주려던 건지 아니면 돈 벌 궁리 안 하고 책만 읽는 나를 한심하게 여겨서인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자기는 하고 싶어도 못 한다면서 "아깝다 야. 요즘 독서 토론 보내는 엄마들 얼마나 많은데. 유망 직종이래. 생각 좀 해봐."라며 마지막까지 내 미래를 걱정해주었다.
진심으로 날 위한 말이라면 친구로서 너무 고마운 조언이다. 내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단호한 말 대신 '애들 가르치는 건 돈 되는 일이라고 쉽게 덤비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소명과 사명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겠냐고 말하며, 조언을 멈추길 바랐다. 애정 어린 조언 일지 선 넘는 오지랖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아, 됐고. 거기까지. 그렇게 쉬우면 네가 하렴.'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간지럽힌 걸 애써 참았다.
깊은 속까지 서로 나눌 만큼의 친구 사이가 아니어서 선 넘은 것처럼 느껴진 것 같기도 한 그날의 에피소드. 친구의 때 아닌 오지랖으로 잠시나마 휴식을 즐기던 기분을 망쳐 조금 우울한 주말 오전이 되었지만 혹여 누군가에게 그런 오지랖을 나도 부린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언젠가 남편도 언제까지 책만 읽을 것이냐, 읽고 실천하라며 결과물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돈이 되는 책 읽기, 돈 버는 글쓰기가 아니라서 의미가 없는 취미활동으로 보는 남편이 야속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상대방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옹졸하고 열등의식만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자주 카페에서 휴식을 즐기는 두 시간의 의미는 독박 육아와 살림에 지친 내 심신을 정화하는 건강한 취미라고 할 수 있다. 친구도 나와 똑같이 살림하는 주부다. 친구의 관심사는 집안을 꾸미는데 필요한 인테리어 소품을 사는 것이다. 유행하는 물건을 사서 수시로 집안 분위기를 바꿔야 기분 전환이 된다고 했다. 유행하는 인테리어 소품, 유행하는 가방, 옷, 액세서리, 남들이 가는 여행지 등등 남이 하는 것을 따라 해야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만약 '그런 건 한 때야. 너도 책 좀 읽으면서 내면을 더 단단하게 키우는 게 어떻겠니?'라고 했다면 친구에게 내가 선을 넘은 것이었을까?
친구는 나한테 돈 벌어야 된다, 이제 일하러 나갈 때가 되었다고 자주 부추겼었다. 그러더니 친구는 여러 번의 면접 끝에 월 180만 원 정도 급여를 받는 반도체 회사 자재부 취업에 성공했다. 이만하면 좋은 조건이라 좋은데 아직 유치원생 둘째 돌봄 문제 때문에 남편이 반대한다고 고민도 했다.
어떻게든 일하려고 노력하는 자기와 다르게 여유롭게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취미생활을 가진 나를 대하는 친구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러움? 한심함?
'이게 다 너를 위해서야', '나니까 해주는 말이야'는 제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성급히 그 말을 건네지 않았으면 한다. 내 마음과 네 마음이 언제나 일치할 거라는 착각. 이 착각이 선을 넘게 하는 것 같다.
가까운 관계를 넘나들지 못하게 선 넘는 일 말고
공감, 배려를 잇는 선이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