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어
독서모임에서 첫 쓴맛
독서모임도 하나의 조직이 될 수 있다. 여럿의 사람들이 들쑥날쑥 하지만 짧게는 한 번, 길게는 몇 년을 이어가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독서 모임이 친목을 쌓기 위한 주된 목적은 아니지만 나는 제법 끈끈해진 지인이 있다.
그는 첫 독서모임에서 선출된 리더였다. 책 한 권 안 읽던 사람이었는데 독서모임 덕분에 살면서 처음으로 한 달에 12권을 읽어 봤다고 했다. 그의 행동은 늘 당당했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멤버들의 적극 추천으로 리더가 되었고 혼자 운영은 힘들다며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녀와 매달 모임 날짜와 장소를 정했고 모임에 들어오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오면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역할을 했다.
독서모임이 만들어지기까지 초석을 깔아준 선생님도 계셨지만 선생님은 우리가 모임 운영을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게 늘 지켜보고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었다. 우리도 선생님한테 기대어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회원들이 처음에는 20명 가까이 늘었는데 점점 모임에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인 것처럼 소홀해지는 게 보였다. 이렇게 운영하면 모임이 흐지부지 될 것 같아서 상의 끝에 회비를 만들었다. 한 달 5천 원씩 정하고 1년 치를 한꺼번에 내는 것이다. 그 달에 모임 참석을 하면 연말에 페이백으로 돌려주는 형식으로 1년을 잘 보냈다.
리더와 내가 책에 흠뻑 빠져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게 있었다. 바로 회원들 마음관리였다. 1년 치 회비를 한 번에 받았기 때문에 회원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어 하는지, 책 읽을 때 어려운 점이 뭐가 있는지, 어떤 식으로 책 읽을 때 도움이 되는지 등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나눠줬어야 했는데 리더십 발휘가 부족했다. 안 나온 회원에게 안부를 한 번 더 물어주고, 서로의 근황을 통해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회원 관리를 했어야 했는데 리더인 그녀는 회원들에게 끌려다니기 시작하면 끝도 없으니 우리가 세운 기준을 밀고 나가야 된다고 주장했고 나도 그녀의 말에 동감하고 따랐다. 그러나 회원들 모두 우리의 생각을 전부 믿고 따라주진 못했다.
페이백으로 회비를 돌려주고 남은 회비들은 우리가 작가 초청 강연을 마련할 때 쓰일 비용에 보태었다. 작가님 강연료+다과에 쓰일 비용으로 강연에 오는 사람들에게 참여비를 받았고 그 몫에 보태었다. 운영하는 우리의 수고 비용은 감히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 후로도 모임을 계속 이어가려고 회비와 운영 규칙을 정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회원들과 상의도 없이 회비를 정한 것과, 운영 규칙 중 매일 읽고 인증하는 것, 모임에 몇 번 이상 불참하면 탈퇴하는 등의 조항 등을 문제 삼았다. 너희가 뭔데 우리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냐는 식이었다. 각자 알아서 읽으면 될 걸 애들 숙제 검사하는 것처럼 인증하라고 강요하는 점을 불쾌하게 생각한 회원과 마찰이 일어났다. 그동안 우리의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 같아 속상하고 화도 나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안 좋은 말까지 오가며 언쟁이 있었지만 다 밝힐 수 없고 분란이 일어나는 회원들과 더 이상 독서모임을 유지하는 건 매우 힘들 것 같았다.
책 한 권을 함께 읽으며 다양한 타인의 시각을 만나다 보면 어느새 다양해진 삶의 빛깔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독서모임 꾸리는 법>
그냥 재밌게 책 읽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사람들과의 관계, 리더십, 멘탈 관리라는 어려운 과제를 남겼다.
'다양해진 삶의 빛깔'을 제대로 볼 줄 몰랐던 것이다. 회원에게서 원색적 비난이 섞인 말을 들을 때 너무 화가 나서 리더였던 그녀와 몇 시간씩 통화할 때,
'우리 그릇이 아직 작은 가봐. 책도 더 많이 읽고 공부해서 더 좋은 모임 만들자. 우리도 열심히 잘했어.'라고 말해 줬을 때 '아냐. 됐어. 다 때려치우자!'로 퉁쳐서 그만뒀더라면 지금 나는 뭐하고 살고 있었을까.
재밌게도 가끔 그때 우리와 등 돌린 회원들 중 지역 도서관 강연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서로 아는 척도 안 하고(못한걸 수도) 눈이 동그래져 어색한 공기가 잠깐 흘렀다. 앞으로도 이 동네를 떠나지 않는 이상 또 마주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땐 웃으며 인사 건네봐야겠다.
그런데 뭐라고 말해야 그때랑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려나?